[회사채 수요예측 10년]
수수료 녹이기·바터거래 없어진 발행시장…투명성↑
①회사채 수요·공급 기반 확대…신뢰도 높아지자 투자자 몰려
이 기사는 2022년 12월 22일 13시 20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사진 제공=금융감독원)


[딜사이트 백승룡 기자] "수요예측을 도입해 회사채 발행시장의 가격결정 투명성을 높이겠다."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등 금융감독당국이 지난 2012년 4월 회사채 수요예측제도를 도입하면서 강조한 대목이다. 회사채 수요예측제도는 발행사와 주관사가 공모 희망금리밴드를 제시한 뒤, 기관투자가들의 희망금리와 희망물량을 반영해 최종 발행조건을 결정하는 절차를 말한다. 발행금리 산정 근거를 기업에서 시장으로 옮겨온 수요예측제도는 올해로 10년차를 맞았다.


22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1~11월 공모채 수요예측 참여금액은 62조9510억원으로 집계된다. 올해 공모채 발행에 나선 기업들의 수요예측 금액(27조6520억원) 대비 참여율은 약 227.7% 수준이다. 수요예측이 도입된 첫 해인 2012년 수요예측 참여율이 88.9%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2.5배 이상 높아졌다. 


◆ '수수료 녹이기', '바터거래'  악습 없앤 수요예측제도


금융투자업계 안팎에서는 수요예측제도를 계기로 회사채 발행시장의 가격 투명성이 높아졌다고 평가한다. 수요예측 도입 전 회사채 발행금리는 사실상 발행사의 요구에 따라 정해지곤 했다. 통상 발행사들이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기 전에 증권사를 통해 기관투자가들의 희망 금리와 물량을 파악, 가장 유리한 조건을 택하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은 발행사가 요구하는 금리에 맞추기 위해 일단 낮은 금리로 인수한 뒤, 높은 금리로 투자자에게 판매하는 '수수료 녹이기' 관행도 만연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수요예측이 없던 당시에는 발행사 우위의 시장구조가 형성돼 주관사의 역할이 미미했다"며 "회사채 발행 시 산출된 가격에 대한 신뢰성도 낮아져 회사채 수요기반이 확대되는 데 한계점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이어 "공개시장을 통해 가격이 결정되는 수요예측이 도입되고 10년 가량이 흐르면서, 국내 회사채 시장에서도 가격의 적정성과 투명성이 강화됐다"고 덧붙였다.


대기업 그룹계열 증권사들이 상대 그룹사의 회사채를 번갈아 인수하는 '바터거래'도 수요예측제도가 자리를 잡게 되면서 개선됐다. 바터거래는 그룹 내 증권사가 계열사의 회사채 발행에서 최대 물량 인수를 못하게 한 규정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사전에 금리와 매수처 등을 확정짓고 발행에 나서는 관행으로 나타났다. 감독당국도 바터거래 근절을 강조하면서 모범규준 등을 발표했지만, 바터거래를 적발하고 입증하기는 까다로웠다. 수요예측 도입 이후부터는 발행 전에 금리를 확정하기 어렵게되면서 바터거래도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됐다.


물론 수요예측제도는 수차례에 걸친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발행사들이 수요예측 과정에서 지나치게 낮게 희망금리를 제시, 투자자들의 초기 참여율이 매우 저조하게 나타난 것이었다. 유효수요에 대한 판단도 주관적인 탓에 발행사들은 발행금리를 높게 부른 매수주문을 '무효'라며 배제하기도 했다. 감독당국은 ▲공모희망금리 결정근거 상세 공시 의무화 ▲희망금리밴드 설정 방식 변경 ▲밴드 내 물량 의무배정 등 개선안을 차례로 도입하면서 시장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지난 2016년에는 기관투자가들 사이의 '눈치싸움'을 해소하기 위해 대표 주관사들도 수요예측 마감 전까지는 참여 현황을 볼 수 없도록 하는 블라인드 제도를 도입, 정보 비대칭성으로 인한 가격 왜곡도 바로잡았다.


◆ 30년물 발행한 SKT, 조달규모 1조원 웃돈 SK하이닉스…수요예측 신기록도


수요예측제도가 성공적으로 안착하게 되면서 발행시장의 신뢰도 향상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지난 10여년간 회사채 수요·공급 기반도 크게 확대됐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확대된 유동성에 힘입어 지난해 기관투자가들이 회사채 수요예측으로 참여한 금액은 157조3000억원에 달했다. 기업들이 수요예측을 통해 발행을 계획했던 조달규모는 총 39조4000억원으로, 투자자들의 참여율은 398.8% 수준을 나타냈다. 이는 수요예측 도입 직후인 2013년과 비교해 투자수요는 38조9000억원에서 4배 증가, 모집액 대비 참여율도 121.8%에서 277%포인트 늘어난 규모다.


기업들도 수요예측 과정에서 새로운 기록들을 세워가며 조달규모를 확대해왔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020년 2월 진행한 수요예측에서 5000억원 모집 대비 2조700억원의 투자수요를 확보, 조달규모를 총 1조600억원으로 증액한 바 있다. 국내 일반 기업이 발행하는 원화 채권 중 사상 최대 규모로 기록됐다. SK하이닉스에 앞서 LG화학(2018·2019년), 포스코(2019년)도 각각 단일 발행으로 1조원을 조달하는 기록을 세운 바 있다.


'AAA'라는 최상위 신용등급을 보유한 SK텔레콤은 지난 2019년 7월 진행한 수요예측에서 국내 민간기업 사상 최초로 30년 만기 공모 회사채를 완판시켰다. 총 2500억원 모집액 가운데 200억원을 30년물에 배정한 SK텔레콤은 수요예측에서 당초 목표 대비 세 배인 600억원의 매수주문을 받은 것이었다. 민간기업임에도 공기업 못지 않은 안정성이 부각된 것으로 풀이됐다. 신용등급 AAA는 10개 투자적격등급 중 가장 높은 등급으로, 국내에서 AAA의 신용등급을 보유한 기업(공기업·금융사 제외)은 SK텔레콤과 KT 뿐이다.


증권사 관계자는 "수요예측이 정착하면서 발행시장의 투명성이 높아져 기관투자가들의 투자수요가 크게 확대돼 왔다"며 "발행사들은 금리를 낮추면서 장기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되고, 증권사들은 주관 역량을 높이고 수수료 수익을 정상화하는 등 '윈윈'이 되는 구조로 정착됐다"고 말했다.


연도별 수요예측 결과. 2012년은 수요예측 도입(4월) 이후 실적(단위:조원). (자료=금융투자협회)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

관련기사
회사채 수요예측 10년 2건의 기사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