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봤더니]
파도 치는 에너지로 돈 버는 기업… 투자유치만 200억원
성용준 인진 대표 "파력·태양광·ESS 아우르는 재생에너지 기업 도약"
이 기사는 2022년 03월 08일 16시 48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딜사이트 최양해 기자]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섬, 소위 오프그리드(Off-Grid)라 불리는 지역에도 발전시설이 필요합니다. 대규모 전력망과 연결돼 있지 않은 이곳에선 주로 디젤 연료로 전기를 만드는데, 지금과 같은 고유가 시대엔 발전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죠. 그런데 파도는 어떤가요. 외딴섬에도 파도는 항상 칩니다. 바다가 가진 파력 에너지를 활용하면 육지에서 석유 연료를 운반하는 비용까지 아낄 수 있어요"


8일 서울 동대문구 인진 본사에서 만난 성용준 대표(사진)는 파력 발전 기술 개발에 뛰어든 이유를 묻자 이 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인진을 파력뿐만 아니라 태양광, ESS(Energy Storage System·에너지저장시스템) 등 재생에너지 기술을 아우르는 회사로 만들겠단 포부도 밝혔다.



◆ 대기업 뛰쳐나와 창업···파력 발전 가능성 엿보다


1975년생, 올해 만 47세인 성용준 대표는 서울대학교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화학도다. 인진을 창업하기 전에는 SK주식회사와 SK에너지에서 다양한 에너지 관련 기술을 섭렵했다. 창업을 결심한 건 입사 후 8년이 지난 2010년이다. 재생에너지 기술에 미래가 있다고 판단하고, 안정적인 대기업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지만 곧바로 창업을 하기엔 회사 운영 경험이 부족하다 느꼈다. 창업 환경과 비슷한 중소규모 회사에서 경험을 쌓기로 했다. 수소 에너지 관련 기업에 취직한 성 대표는 이곳에서 2년간 기획, 재무, 구매, 회계, 경리 등 수많은 업무를 마주하며 멀티플레이어로 성장했다.


회사를 차릴 준비가 됐다고 느낀 성 대표는 결심을 굳히기 위해 법인부터 설립했다. 이때가 2011년 7월이었다. 본격적으로 회사를 출범한 건 꼬박 1년이 지난 2012년 7월. 창업의 뜻을 모은 2명의 동료와 함께 '인진(INGINE)'을 출범했다. 사람을 뜻하는 인(IN)과 엔지니어링의 중간 글자인 진(GINE)을 합쳐 인류에 기여하는 지속가능한 에너지 기술을 만들겠단 포부를 담았다.


주력 사업 아이템은 '파력 발전'으로 정했다. 여러 재생에너지를 두고 고민한 결과 파력 쪽에 힘이 실렸다. 파력 발전은 크게 '온쇼어'와 '오프쇼어'로 구분된다. 온쇼어는 해안가 인근 육지에 주요 시설을 둔 발전 방식이다. 반대로 오프쇼어는 수심이 20~50m로 깊은 먼 바다에서 에너지를 끌어오는 방식이다.


인진은 이 가운데 온쇼어를 선택했다. 해저송전케이블 등 시설비용으로만 수천억원이 드는 오프쇼어보다는 초기 도입비용이 낮은 온쇼어의 경쟁력이 높다고 봤다. 또 주요 타깃을 디젤 연료를 사용하는 오프그리드 시장의 대체제로 정한 만큼 온쇼어가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인진이 개발한 온쇼어 파력 발전은 '인웨이브(INWAVE)'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인웨이브는 원반처럼 생긴 부유체를 육지에 설치한 발전 설비와 로프로 연결해 전력을 생산하는 방식이다. 파도가 치면 부유체가 움직이고, 여기서 발생한 에너지를 전력으로 전환하는 형태다.


성 대표는 "파도가 치면 부유체가 움직여 로프를 당기고, 육상에서는 다시 로프를 감는다. 이때 당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가 훨씬 크기 때문에 발전기를 돌릴 수 있게 된다"며 "연을 날릴 때 바람이 강하게 불면 얼레를 풀어주고, 바람이 잦아들면 얼레를 감는 걸 연상하면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쉽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다른 파력 발전 기술은 파도의 수직운동(파도의 높이)이나 수평운동(파도의 흐름) 중 한 곳에서만 전기를 생산하는데, 인웨이브는 상하좌우 어떤 움직임에서든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며 이 부분이 독보적이라고 강조했다.


◆ 2년간 마른 자금줄···단비처럼 다가온 SI의 손길


독보적인 기술을 갖춘 인진이지만 데스밸리(death valley·죽음의 계곡)를 겪지 않은 건 아니다. 상용화까지 5년이면 될 것 같던 기술은 정체기에 빠졌고, 2017년 6월부터 2019년 5월까지 거의 2년 동안 투자금을 한푼도 받지 못했다. 연구자금이 모자라니 개발 속도는 더뎌졌고, 개발 진도가 나가지 않으니 투자금을 받지 못하는 악순환의 늪에 빠졌다. 사업을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엄습했다.


이때 손을 내민 곳이 SK이노베이션이다. 2019년 12월 인진에 25억원을 투자하며 조력자로 나섰다. SK이노베이션은 또 같은 해 7월 회사 임직원을 대상으로 구성원 크라우드펀딩을 진행, 인진의 자금 갈증 해소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자금난을 해결한 인진은 절치부심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겹치며 해외 수주 사업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태양광과 ESS 부문으로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며 기초체력을 다졌다. 2020년엔 창업 후 8년 만에 처음으로 유의미한 매출액(10억원)을 올렸고, 지난해엔 45억원까지 규모를 늘렸다. 올해 매출액은 100억원 이상을 기대케 한다.


성 대표는 "SK이노베이션 투자를 받고난 이후 숨통이 트였고, 직원들과 머리를 맞댄 결과 태양광, ESS 부문으로 사업 다각화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태양광과 ESS는 파력 발전과도 시너지가 좋아 장기적 관점에서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인진은 올해와 내년엔 주력 사업인 파력 발전 부문에서도 가시적 성과를 내겠단 입장이다. 우선 캐나다 유퀏 지역 내 연안부두에 파력 발전 설비를 설치하는 계약을 성공적으로 진행하는 게 목표다. 현재 설비 설치를 위한 기초 설계작업을 수행하고 있는 단계다.


여기에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지연된 베트남 상용 실증 프로젝트를 비롯해 국내에서도 실증 프로젝트를 추진할 예정이다. 이밖에 프랑스, 모로코, 인도네시아, 대만, 일본 등 인진의 파력 발전 기술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해외 국가들과 프로젝트 수주를 논의할 계획이다.


성 대표는 "2023년 증시 입성을 목표로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고 있는 만큼 내년까지 인진의 파력 발전 기술이 상용화에 임박했다는 에비던스(evidence·증거)를 쌓고자 한다"며 "지난해 4월부터 시작한 시리즈B 투자가 조만간 완료되고, 이르면 올해 안에 시리즈C 투자까지 유치해 파력 발전 기술 상용화에 속도를 낼 예정이다"고 밝혔다.


인진이 현재까지 유치한 외부 투자금은 약 200억원. SK이노베이션, 산업은행, 하나금융투자, 신용보증기금 등 여러 기관투자자가 조력자로 나섰다. 벤처캐피탈(VC)로는 쿨리지코너인베스트먼트, 더웰스인베스트먼트, 인라이트벤처스가 인진의 성장 잠재력에 베팅했다.


성 대표는 "인진의 기술성숙도는(Technology Readiness Level·TRL)는 현재 1~9단계 중 7단계로 평가되는데, 추진 중인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상용화 단계인 8~9단계까지 인정받을 수 있다"며 "온쇼어 파력 발전 기업 가운데 기술성숙도 7단계에 올라선 기업은 2~3곳에 불과한 만큼, 퍼스트무버(선도자)로서 입지를 더욱 넓혀갈 계획이다"고 포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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