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갈길 먼 전자투표제
기업은 도입 의지 불투명…주주는 무관심
이 기사는 2022년 02월 28일 08시 52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딜사이트 최보람 기자] 2010년 첫 선을 보인 전자투표제가 십년이 훌쩍 지난 현재도 사실상 기업의 '보여주기식' 선심에 그치는 모양새다. 이를 도입한 기업 수는 전체 상장사의 절반가량에 육박할 만큼 '대세' 임은 분명한데 실효성이 없다는 얘기가 재계는 물론 주주들한테서도 나오고 있다.


주주가 온라인으로 기업경영에 관여할 수 있는 이 편리한 제도가 왜 온전히 자리를 못 잡는 걸까. 기업과 주주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판단된다.


우선 기업들이 안건에 따라 전자투표제가 활용되는 것을 꺼려하고 있다. 도입 자체가 기업 재량인 데다 주주들이 투표에 쉽게 접근할수록 기업이 경영권을 방어하는 데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지난해 소액주주들과 주주가지체고, 오너일가의 비위행위 등으로 경영권 분쟁을 치른 한샘, 사조산업은 모두 임시주총에서 전자투표제를 도입하지 않았다.


두 회사 임시주총에 참석해본 결과 이는 회사 대주주에겐 말 그대로 '신의 한 수'가 됐다. 코로나 시국임에도 주주들이 주총장에 모습을 나타내야 했으며 안건마다 투개표를 거치다보니 온전히 하루 일과를 빼앗긴 주주도 더러 있었다. 그만큼 일반 주주가 본인의 권리를 행사하는 데 제약이 생긴 셈이다.


작년 9월 열린 사조산업 임시주총의 경우 오전 9시에 시작된 총회가 투개표에만 수 시간이 지체되며 오후 5시가 다 돼 끝나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이에 일부 소액주주들은 전자투표 미도입 기업을 두고 "대주주의 처신에 문제가 있거나 뭔가 켕길 만 한(?)일을 벌이겠단 심산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기업이 유불리에 따라 전자투표를 선택하는 건소액주주를 찬밥취급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를 기업 탓으로만 돌리기엔 다소 어폐도 있어 보인다. 주주들이 주가 등락만큼 평소 회사경영에 관심을 가졌다면 대주주가 전자투표제 도입 요구를 마냥 무시할 수 있었을까?


한국상장사협의회에 따르면 2020년과 지난해 주주총회에서 기업 안건에 전자투표를 한 주주 비중은 5~4%에 그쳤다. 한샘, 사조산업과 같이 일반 주주들이 들고 일어난 케이스가 몇 없던 것도 있겠지만 다수 주주가 회사 경영에 무관심했던 영향 역시 컸다.


기업들은 내달 정기주총시즌을 앞두고 주주총회소집 공고를 내고 있다. 이 자료에는 기업이 전자투표를 도입하는지, 사업을 어떻게 하려는지, 이를 위해 이사회는 어찌 구성할 지, 오너가 꼼수(?)를 부리려 하진 않는 지에 대한 정보들이 들어있다. 자기 돈이든 빚을 지든 돈 들여 주식투자 했으니 아웃풋을 내야 할 것 아닌가. 주총소집공고를 보고 회사가 주주가치 제고에 힘을 쏟고 있는 지 의심 정도는 해보시길 추천 드린다. 주주들의 무관심은 북한의 위협보다 큰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요인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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