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건설사 R&D 투자…7년째 0%대 제자리
매출 대비 평균 0.51% 불과…"설계 등 고도화기술 투자 외면"
이 기사는 2021년 11월 09일 06시 00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딜사이트 권녕찬 기자]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전 세계적인 기술 패권 경쟁이 가속화하고 있지만, 국내 건설사들의 투자는 제자리걸음인 것으로 나타났다.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설계기술 등 엔지니어링에 대한 투자에 인색하고 여전히 도급 위주의 수월한 주택 사업에만 매몰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대건설만 1.33% 체면치레…"기술경쟁력 여전히 떨어져"


팍스넷뉴스가 10대 건설사의 매출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율을 분석한 결과 7년(2015~2021.6월) 내내 1%에도 못 미쳤다. 10대 건설사의 매출 대비 평균 R&D 투자 비율은 0.51%에 그쳤다. 매출 100억원이라고 가정하면 연구개발 투자에 1억원도 투입하지 않은 것이다. 


투자 금액으로만 보면 현대건설이 누적 8524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삼성물산이 7493억원으로 두 번째, DL이앤씨가 4340억원, 대우건설이 3827억원 순이다. 다만 삼성물산 투자액의 경우 건설 부문 외에도 급식 사업 등이 포함된 수치다.


매출 대비 평균 투자 비율(0.51%)을 웃도는 건설사는 4곳에 불과했다. 현대건설이 1.33%로 가장 높았고 SK에코플랜트가 0.66%, DL이앤씨(옛 대림산업)가 0.65%, 대우건설이 0.62% 순으로 나타났다. 현대엔지니어링은 0.02%로 10대 건설사 중 가장 낮았고 HDC현대산업개발이 0.09%로 뒤를 이었다. 


직접적으로 비교할 순 없지만, 삼성전자의 지난해 매출 대비 투자 비율이 9%, 현대자동차가 3%인 점을 감안하면 건설사들의 투자 비율이 지나치게 저조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019년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발간한 2019산업기술백서에 따르면 건설업계는 업종별 기업연구소 갯수도 타업종에 비해 저조했다. 총 11개 과학기술분야에서 건설의 기업연구소 분포 갯수는 1164개로, 환경(947개), 섬유(332개)에 이어 9위에 그쳤다.


건설업계에 정통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내 대형건설사들은 그간 설계기술과 같은 고도화 기술에 투자하지 않았다"며 "종합건설사들은 프로젝트 전반을 관리하고 책임지는 PM(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역량은 뛰어나지만 기술역량은 여전히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전문건설사에게 기술역량이 있긴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영세한데다 대형사들도 관심을 주지 않는다"며 "대형사들은 특별한 고도기술이 필요 없는 국내 주택 사업에만 몰두하고 있어 세계적 건설사로의 도약은 요원하다"고 말했다.



◆"도급 중심 수동적 구조 등…투자 필요성 굳이 못 느껴"


최근 들어 건설사들이 증강 현실(AR), 드론, 3D 스캐닝 및 프린팅, 건축정보모델링(BIM), 인공지능(AI) 장비 등 첨단 기술을 접목하고 있지만 아직 걸음마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해외 EPC(설계·조달·시공) 사업 수주도 꾸준하긴 하나 대규모 손실이 지속 발생하고 중동 지역에 국한돼 있으며 설계 경쟁력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국가별 건설기업 역량평가(2018)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시공능력과 가격경쟁력은 우수한 편이나 상대적으로 설계경쟁력은 뒤쳐졌다. 한국의 시공경쟁력은 10위, 가격경쟁력은 7위였으나 설계경쟁력은 13위로 나타났다. 종합경쟁력은 9위였다.


전문가들은 국내 건설사들의 저조한 연구개발 투자에 대해 건설사들이 처한 환경을 그 원인으로 꼽았다. 건설사들이 굳이 연구개발에 나설 필요를 못 느끼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설계와 같은 엔지니어링 기술이 고부가가치 사업이긴 하나 매출 대부분이 주택 사업에서 나오고 사업 구조가 거의 도급 중심이어서 특별히 고도기술에 투자할 만한 필요성이 생기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은형 책임연구원은 "첨단 건설장비나 건설자재와 관련한 연구개발 역시 해당 제조업체가 하는 것이란 경향이 강하다"며 "주택사업 기술력은 이미 확보했고 그외 신기술로는 수익 보장이 불가능할 뿐더러 단기간 효과를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박철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건설사는 발주사의 발주 내역과 정해진 규격에 따라 최적화된 비용 절감으로 하자 없이 지으면 그만"이라며 "굳이 비용을 들여서 R&D에 적극 나설 메리트를 못 느낀다. 굉장히 수동적인 구조"라고 했다. 


국내 건설사들이 모기업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미래 전략 차원을 고려할 때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건설사 투톱으로 꼽히는 삼성물산과 현대건설만 해도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에 그치며 미래 포트폴리오로는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철한 연구위원은 "국내 건설사들은 모기업이 필요한 생산시설과 설비 등을 최적의 성능으로 찍어낼 수 있느냐 정도로 취급된다"며 "역량을 키워야 하는 메인 사업이 아니라 세컨드 사업으로 여기는 경향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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