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IPO 기업의 품격
몸값 거품, IPO 한탕주의 만연…투자자 피해 우려, 상장사 운신 폭 제한될 수도
이 기사는 2021년 01월 22일 09시 36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딜사이트 전경진 기자] "입찰 경쟁 과정에서 다들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적정 기업가치를 다시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좋겠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 자주 회자 되는 미담(美談)이 있다. SK그룹이 계열사 SK바이오팜의 기업공개(IPO)를 추진하면서 보인 '품격'에 대한 일이다. 당시 그룹 임원들은 상장 주관사단과 첫 대면 자리에서  '적정 기업가치'를 되물었다고 한다. 주관사 선정 과정에서 복수 증권사에게 상장 몸값을 제안받았지만 과도한 입찰 경쟁 속에서 가격에 거품이 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당시 SK그룹은 '고평가'된 기업가치로 상장에 나서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주관사단에게 밝혔다고 한다. 자본시장과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입히면서까지 과도한 몸값 욕심을 부릴 생각이 없다는 뜻을 내비쳤다.


결국 SK바이오팜은 지난해 약 4조원의 몸값으로 증시에 데뷔했다. 주관사 선정을 위한 경쟁 입찰 과정에서 증권사들이 제시한 몸값이 10~12조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호가'의 절반도 채 안되는 가격으로 IPO를 진행했다.


이런 미담은 사실 업계에서 보기 드문 일이다. 오히려 IPO 시장에서는 기업들의 '한탕주의'가 판을 친다. 어떻게든 기업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공모주 청약에서 대규모 자금을 끌어 모으려 한다. 


최근 증시 호황 속에 이런 IPO 기업의 '한탕주의'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적자 기업도 '조단위' 시가총액을 받을 수 있다고 당연하게 여기는 추세다. 일부 기업들은 과거에 선정한 주관사를 교체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시장 호황을 감안해 더 높은 몸값을 제시하는 증권사로 주관사를 교체하겠다는 꿍꿍이다. 


과도한 몸값 욕심은 자주 부작용을 노출한다. 상장 직후 주가 하락은 기본이다. 간혹 상장 몸값이 한달도 채 안돼 반토막나는 경우도 있다. 이 과정에서 거품 낀 공모가로 주식을 매입한 투자자들만 애꿎은 피해를 입는다. 올해의 경우 IPO 과정에서 일반투자자 몫의 공모주 배정 물량이 늘어났기 때문에 일명 '개미'들 피해가 눈덩이 처럼 커질 수 있다. 증시 입성 첫날에 높은 기업가치에 혹해 뒤늦게 투자에 나서는 '70조(증권사 투자자 예탁금 규모)' 개미들도 덩달아 피해를 입을 수 있다. 투자자들의 원성이 해당 기업에게 쏠리는 것은 불보듯 뻔한다.


사실 기업 입장에도 과도한 기업가치는 분명 '독(毒)'이 된다. '상장사'로서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 있어서다. 상장 직후 급락한 주가는 반등하는 일이 드물다. 기업가치 자체에 대한 시장 의구심 탓에 깜짝 실적과 사업 호재에도 주가는 반응하지 않는다. 기업과 주주(투자자)의 갈등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 경우 주식자본시장에서 추가로 시장성 자금 조달을 하는 일이 어려워진다. 기업이 향후 유상증자를 진행하려 해도 주주 참여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자칫 대표이사 교체와 같은 극단적인 주주들의 주장에 부딪칠 수도 있다.


올해 공모주 시장의 호황은 이어질 전망이다. 대기업들부터 앞다퉈 계열사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LG, 롯데, 한화, 카카오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대규모 공모를 진행하는 탓에 시장에 미치는 영향 역시 다른 IPO 기업보다 클 전망이다. 그런데 벌써부터 몸값 거품 논란이 나온다. 예컨대 LG에너지솔루션의 몸값은 현재 100조원까지 거론되는 중이다. IB 업계에서는 벌써부터 '기업이 정말 자신들의 현재가치를 100조로 여기면 어떡하지'라는 우려의 말이 나온다.


IPO 기업에게 시장을 존중하는 품격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치게 낭만적인 일일까. 호황기에 몸값 욕심을 부리는 것은 막을 수는 없다. 다만 한가지는 분명히 언급하고 싶다. 투자자 원성과 기업 평판 저하를 감당할 수 있느냐다. '격' 떨어지는 그룹의 이름을 시장은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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