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봤더니]
해외진출 VC
"해외투자, 정말 어렵지만 반드시 해야한다"
신진호 KTB네트워크 대표 "해외진출에 대한 환상은 금물"
이 기사는 2019년 12월 12일 10시 00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딜사이트 김민지, 권일운 기자] "벤처캐피탈은 로컬(local, 국내)에 특화된 투자 기관이다."


신진호 KTB네트워크 대표(사진)의 지론은 벤처캐피탈과 해외 투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쪽에 가깝다. 그런데 신진호 체제의 KTB네트워크는 가장 활발하게 해외 투자를 하는 벤처캐피탈로 늘 거론된다. 심지어 KTB네트워크 내에서 신 대표의 역할은 다른 임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며 해외 투자를 독려하는 쪽에 가깝다.


이런 아이러니는 KTB네트워크가 어떻게 해외 투자에 나섰고, 현지에 뿌리를 내리게 됐는지를 되짚어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된다. KTB네트워크는 대한민국 벤처캐피탈 업계의 산 증인인 신 대표가 합류하기 전인 1984년부터 미국에 거점을 설립, 해외 투자 기회를 모색했다.


KTB네트워크의 미국 진출은 '벤처캐피탈의 본고장에서 진짜 벤처투자를 배워보자'는 취지에서 이뤄졌다. 당시만 하더라도 유일하게 벤처투자 시장이 형성돼 있는 미국 현지에 일종의 유학생을 파견하는 모양새였다. 당시 정권 차원에서 대외 의존도가 높은 산업 구조를 개편하기 위해 월드뱅크그룹의 컨설팅을 받았고, 그 결과 벤처기업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이 나온 것이 시발점이었다.


신 대표는 "월드뱅크그룹은 벤처 활성화를 위해 벤처캐피탈 육성이 필요하다고 강력히 주장했고, 벤처캐피탈 산업은 정부의 주도 없이는 태동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라며 "정부와 주요 대기업들이 십시일반 형태로 출자해 만들어진 벤처캐피탈이 지금의 KTB네트워크"라고 설명했다. 


변방 출신인 KTB네트워크가 미국 시장에서 존재감을 인정받는 것은 쉽지 않았다. 초기에는 기존 미국 벤처캐피탈이 조성하는 펀드에 출자자(LP)로 참여하는 방식의 투자가 주류를 이뤘다. 최일선은 아니었지만, 벤처캐피탈 시장의 '메이저리거'들이 어떻게 투자하고 사후관리 하는지를 습득하는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


1990년대부터는 직접 투자 활동에 나섰다. 투자 대상 가운데 일부는 앞서 LP와 운용사(GP) 자격으로 인연을 맺은 엑셀파트너스 등의 소개로 선정할 수 있었다. 신 대표는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발달한 덕분에 네트워크 장비 등의 분야에서 상당한 성과를 냈고, 미국에서만 수천만달러의 수익을 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한창 미국 시장에서 재미를 보기 시작하던 무렵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그에 앞서 2000년대 초반에는 'IT버블'이 붕괴하는 바람에 타격을 입기도 했다. 더이상 미국 시장의 리스크를 감내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그래서 눈을 돌린 곳이 중국이었다.


중국에 주목한 이유는 간단했다. 경기가 급성장했고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첫 투자 대상으로 점찍은 곳은 광고미디어 기업 포커스미디어였다. 포커스미디어는 2005년에 미국 나스닥 시장에 기업공개(IPO)를 성사시키며 '대박'을 안겨다 줬다.


마수걸이 투자의 대성공은 2006년 중국 투자 전용 펀드를 조성하는 쾌거로 이어졌다. 정책자금 없이 민간 자금으로만 1000억원 짜리 중국 전용 투자펀드(차이나 옵티멈 펀드)를 결성했다. 첫 중국 펀드는 원금을 두배로 불리는 성과를 냈다. 영재교육에 특화된 학원 프랜차이즈로 시작한 쉐얼시(學而思, 학이사)가 실적을 견인했다. 쉐얼시는 투자 2년만에 나스닥 IPO에 성공했다.


이렇게만 보면 KTB네트워크의 해외 투자 스토리에는 그 어떤 굴곡도 존재하지 않았던 듯 하다. 하지만 그 이면의 치열함은 당사자들만이 알고 있다. 초기에는 약소국 자본이라는 한계가 있었고, 지금도 이방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신 대표는 "이사회에 참여하지 않으면 투자 기업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알 길이 없다"면서 "이사회에 참여할 만큼의 지분을 확보하지 못했다면, 이사회 참여 권한이 있는 다른 주주나 현지 벤처캐피탈과 어떤 식으로든 친분을 형성해 놓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주주 자격으로 각종 데이터나 경영 현황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국내 기업들과는 전혀 다른 부분이다.


해외 유력 자본들과 '쩐(錢)의 전쟁'을 벌여야 한다는 점도 녹록지 않다. 신 대표는 2000년대 중반 상하이에 기반을 둔 기업 한 곳의 사례를 들었다. "우리나라였으면 300억원 남짓 가치를 인정받았을 듯한 기업이 자신들의 가치를 3000억원이라고 주장하더라"는 것이 신 대표의 이야기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현지에서 통용되는 시세를 인정하게 됐고, 그에 걸맞게 재원을 확보해야 하는 부담이 생겼다.


인수·합병(M&A)이 활발한데다 적자 상태의 기업도 상장이 가능한 나스닥 시장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국내 벤처캐피탈들이 가지고 있는 환상도 현실과는 다르다고 신 대표는 지적했다. "거래량이나 보호예수기간, 상·하한가제도 등의 측면에서 오히려 미국 벤처캐피탈들이 부러워하는 것이 한국의 코스닥 시장"이라고 그는 말했다. 해외 투자는 엑시트(투자금 회수) 또한 만만치 않다는 점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신 대표는 "해외투자는 절대 멋으로 해서는 안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제발 해외투자에 대한 환상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도 했다. 해외 투자는 반드시 "그 회사에 투자해야만 한다"는 명확한 이유와 논리 구조가 뒷받침되고, 대체제가 없는 곳이라야 한다는 게 신 대표의 원칙이다. 


신 대표는 비슷한 맥락에서 국내에서 해외 기업 투자를 검토하는 것은 실패 확률이 높다고 믿는 편이다. "오죽 자기 나라에서 투자 유치가 어려우면 이역만리 한국까지 찾아 오겠냐"는 이유다. 다른 벤처캐피탈이 주도하는 투자에 '묻지마 동행'하는 것도 극도로 경계한다.


그럼에도 해외투자는 필연이라는 것이 신 대표의 믿음이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국내 LP들로부터 수요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성장 잠재력이 큰 시장 또는 벤처투자의 기대수익률이 국내보다 높은 시장에 한국 벤처캐피탈을 통해 발을 들이려는 LP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KTB네트워크가 한국정책금융공사(지금은 KDB산업은행에 합병) 주도의 해외진출플랫폼펀드와 국민연금이 출자한 한중시너지펀드를 조성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재 KTB네트워크가 해외 시장에 할애하고 있는 투자 재원은 40%에 육박한다. 해외 투자에 대한 최고경영자(CEO)인 신진호 대표의 접근법이 극도로 보수적임에도 불구하고, 그 절실함과 필요성을 대단히 크게 체감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미국과 중국에 이어 최근에는 인도 시장의 잠재력도 눈여겨보고 있다.


단순히 수익뿐만 아니라 투자 트렌드를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해외 투자의 실익은 크다고 신 대표는 생각하고 있다.  신 대표는 "일찌감치 미국과 중국에 진출해 수익도 많이 낸 것이 사실이지만 더 큰 소득은 새로운 산업과 기술을 바라보는 안목을 키웠다는 점"이라며 "모든 요인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해외 투자는 정말 어렵지만, 반드시 해야되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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