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새분쟁’이 촉발한 凡한진 4형제 비운의 스토리
저무는 한진家 2.0 시대…권력 잃고, 형제 잃고 ‘상처만 가득’
故조중훈 한진 창업주(가운데)가 1998년 1월 ‘한진 오슬로호’를 배경으로 아들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4남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 3남 故조수호 한진해운 회장, 故조중훈 창업주, 장남 故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차남 조남호 한진중공업그룹 회장.


[딜사이트 류세나 기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별세로 말 많고 탈 많던 한진가(家) 오너 2세들의 경영시대도 사실상 마무리 국면에 들어섰다.


재계에서는 '형제의 난'을 겪은 재벌그룹은 여럿 있지만, 범(凡)한진가만큼 깊은 상처를 낸 세대교체를 이룬 창업 2세대는 드물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9일 한진그룹 등에 따르면 故조중훈 한진 창업주의 장남인 조양호 회장이 8일 새벽 미국 로스앤젤레스 소재의 한 병원에서 숙환으로 사망했다. 지난 달 27일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직을 빼앗긴지 불과 12일 만에 벌어진 일이다. 그 사이 한진 4형제 중 차남인 조남호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도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을 물어 한진중공업 사내이사직에서 물러났다. 보유하고 있던 지분도 전액 감자 처리돼 더 이상 경영에 참여하지 못하게 됐다. 회사 경영과 소유 모두에서 완전히 배제된 것이다.


한진가의 비극은 조중훈 창업자가 2002년 세상을 떠나면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故조양호 회장이 그룹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선친 유산을 둘러싼 경영권 다툼이 불거지게 됐다.


故 조 창업주의 유언장에 따라 장남인 조양호 회장에게는 대한항공, 차남 조남호 회장에게는 한진중공업, 3남인 故조수호 회장에겐 한진해운, 4남인 조정호 회장에게는 메리츠금융(당시 동양화재·한진투자증권)을 물려주는 것으로 그룹 승계가 결정됐는데, 조남호·정호 회장이 유언장 조작을 주장하며 결국 법정공방으로까지 비화됐다. 형제간 ‘옥새분쟁’으로 육·해·공 모두에서 최고의 수송그룹이 되겠다는 선친의 창업 목표는 퇴색됐고, 범한진가는 4개 영역으로 각각 쪼개졌다.


그룹 분열 이후로도 형제들간 알력다툼은 여전했다.


대한항공한진해운은 주보험 거래처를 메리츠에서 경쟁 보험사로 갈아탔다. 한진중공업은 직원 출장시 대한항공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조양호 회장은 故 조수호 회장의 바톤을 이어 받은 제수 최은영 회장과 경영권을 둘러싼 잡음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들은 2016년 모친 故 김정일 여사 타계 당시 빈소에 모였지만 이때도 끝내 화해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자기 몫을 지키기 위해 피를 나눈 형제들과 인정사정 없는 공방을 벌였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부질없는 다툼이었다. 이들이 이끌던 기업은 각각의 이유로 위기를 맞았다.


한진해운은 해운업계 불황 직격탄을 맞아 파산처리됐고, 조남호 회장 역시 경영실패로 회사를 잃었다. 장남 조양호 회장도 가족들의 갑질논란으로 촉발된 경영권 압박 사태로, 사내이사직 박탈이란 불명예를 안고 향년 70세 일기로 생을 마감하게 됐다.


대한항공은 오너일가의 취약한 지배구조 탓에 자녀 대에서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그나마 4남인 조정호 회장만이 유일하게 범한진 2세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형국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국내 항공·물류 등 역사상 범한진가가 일군 성과가 크지만, 이들 일가의 발자취만 놓고 보면 ‘비운의 재벌’에 가깝다”면서 “특히 조양호 회장 타계 이후 맞딱뜨린 한진그룹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안정적인 승계가 이뤄질 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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