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실린 한진그룹, 안심하긴 이르다
조양호 회장, 대한항공 등기이사 연임 낙관 일러…한진칼도 표대결 예정


[딜사이트 권준상 기자] 한진칼이 서울고등법원으로부터 항고 인용 결정을 받으며 29일 열릴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한숨을 돌렸다.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2대주주인 행동주의 사모펀드 케이씨지아이(KCGI)의 주주제안 자격(6개월 지분 보유) 미달로 KCGI가 제안한 주총안건이 제외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석태수 현 한진칼 대표이사 사장의 사내이사 재선임과 주요 정관변경안건을 두고 표대결이 예고돼 있어 마냥 안심하기에는 이른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이보다 앞서 27일 개최하는 대한항공의 주총에서 조양호 회장의 등기이사 연임안건을 다루는 점도 불안요인이다.


아직 대한항공의 2대주주인 국민연금(지분 11.56% 보유)은 의결권 행사 방향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기 않았다. 대한항공의 이사 재선임은 주총 특별결의사항이다. 출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한진칼 입장에서는 국민연금의 표 행사 방향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수 있다. 그룹 내부에서도 한진칼보다 대한항공의 주총에 전력을 쏟는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한진칼은 이번 주총에서 석 대표이사 사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의 건을 놓고 KCGI, 국민연금과 표대결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KCGI는 특수목적법인 그레이스홀딩스를 통해 한진칼의 지분 12.8% 보유한 2대주주이고, 국민연금은 6.7%의 지분을 쥔 3대주주로 자리하고 있다. 조양호 회장과 특수관계인은 28.7%의 지분을 갖고 있다. KCGI는 줄곧 석 대표이사의 사내이사 재선임에 대해 그가 과거 한진해운의 대표이사로서 한진해운을 지원해 한진칼을 비롯한 한진그룹 전체의 신용등급 하락을 야기한 장본인이라서 사내이사 후보자로 부적합하다는 반대입장을 고수해왔다.


3대주주인 국민연금은 아직 의결권 행사 방향에 대한 입장표명을 하지 않았다. 국민연금의 의결권자문사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가 해당 안건에 대해 찬성투표를 권고했다는 점에서 한진칼에 다소 힘이 실린 듯 보이지만 국민연금이 최종결정을 내리기 전까지는 안심하기 이르다.


이에 앞서 세계적 의결권 자문기관인 ISS가 석 대표의 이사 재선임에 대해 “지난해 조양호 회장이 횡령, 배임 혐의로 기소된 상황에서 사내이사로서 관리자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것을 이유로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는 점도 부담요인이다. 국민연금도 국민연금이지만 주요 의결권 자문사들의 권고안을 반영해 표 행사에 나서는 기관과 외국인 등 지분 약 52%를 쥔 기타주주들의 표심이 달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사의 자격에 대한 정관 일부 변경의 건을 다루는 점도 부담이다. 국민연금은 한진칼 주총 안건으로 ‘이사가 배임, 횡령의 죄로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때 결원으로 본다’는 안건을 올렸다. 해당 안건도 특별결의사항이다. 지분구조상 조 회장 측에 유리한 상황이지만 여론의 비판 속에 반대세력이 결집해 조 회장을 압박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조 회장은 현재 한진칼의 대표이사 회장(사내이사)로 재직 중이다. 임기는 내년 3월까지다. 조 회장은 27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 등으로 검찰에 기소돼 재판 중이다.


한진칼 주총보다 이틀 앞서 개최하는 대한항공 주총도 한진그룹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그룹 내부에서는 “한진칼보다 대한항공 주총에 더 집중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조 회장의 등기이사 재선임 안건을 다루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에 KCGI의 지분은 없다. 2대주주인 국민연금의 결정이 중요한 상황이다. 대한항공은 조 회장과 특수관계인이 지분 33.74%를 보유하고 있지만 마냥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한항공의 등기이사 재선임은 주총 특별결의사항으로, 과반수 출석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우군을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11.56%의 지분을 쥔 국민연금의 표심이 중요한 상황이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56%의 지분을 쥐고 있는 소액주주들로부터 위임장 확보에 나서고 있다고 알려지면서 한진그룹 입장에서는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행사할 경우 재선임 안건의 통과를 장담할 수 없을 전망이다.



한진그룹은 이번 주총에서 자신들이 제안한 안건들이 통과되더라도 향후 행보가 중요하다. KCGI가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경영참여의사를 밝혔고, 이에 한진그룹은 그룹차원의 경영개선방안을 공식표명한 상황이다. 향후 개선안에 대한 이행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경우 앞서 ‘위기모면의 수단으로 제시했다’는 KCGI의 주장에 힘이 실리게 돼 다시 한 번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앞서 한진그룹은 지난달 지배구조·사업성 개선, 주주환원 정책 확대를 골자로 한 ‘그룹 경영발전방안’을 발표했다. KCGI가 경영개선을 요구한데 따른 후속조치의 성격이었다. 한진칼의 사외이사 수 확대, 대한항공의 부채비율 축소, 송현동 부지 등의 매각 추진, 유사 사업영역의 통합에 따른 효율성 개선, 중장기적 배당 확대 지속 등의 내용이 담겼다.


업계 관계자는 “KCGI는 그레이스홀딩스를 통해 계속해서 한진칼 지분을 추가 취득하고 있다”며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KCGI의 한진그룹에 대한 경영참여 의지는 꺾이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이어 “KCGI가 계속 경영참여 의지를 고수할 경우 한진그룹의 경영진은 KCGI의 주장에 맞서 주주를 설득하기 위해 KCGI의 제안보다 주주가치에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음을 인정받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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