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김호연 기자] 용해로가 내뱉은 유리물은 새빨간 빛을 내며 조각조각 나뉘었다. 적당한 크기로 잘린 유리물은 순식간에 금형(몰드) 안으로 들어가 화장품 용기로 변신한다. 만들어진 유리병은 은은한 주황빛에서 투명하게 식어가며 최종 검수를 기다린다.
유리 용기의 원료가 되는 규사를 용해로에 투입하고, 화장품 용기가 몰드에서 나오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직접 제조에 참여한 작업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국내 유일의 친환경 자동화 공정을 자체 노하우로 구축하는 데 성공한 에스엠씨지의 이야기다. 에스엠씨지는 최근 키움제7호스팩과 합병을 확정하고 오는 3월 코스닥 상장을 앞두고 있다.
◆"하루 50톤 생산 용해로, 지난해 매출액 4배도 가능"
3일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에 위치한 에스엠씨지 본사를 방문했다. 최승호 에스엠씨지 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둘러본 화장품 용기 생산 공정은 기대했던 모습과 조금 달랐다. 실제 전기용해로는 애국가 영상에 등장해 쇳물을 끓이는 용광로처럼 거대한 유리물을 몰드에 직접 들이붓지 않았다. 최 대표는 "그런 방식으로 작업하면 안전에 큰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웃으며 답했다.
에스엠씨지의 전기용해로는 유리의 원료인 규사를 자동화장비를 통해 용해로 상부에 고르게 살포하고 고온의 열을 가해 규사를 녹인다. 녹은 규사는 각종 첨가물과 만나 유리물이 되고 유리물은 필요한 만큼 잘라져 몰드에 들어간다. 몰드에 들어간 유리물에 자동으로 공기를 주입하면 유리물이 부풀어 몰드에 맞춰지고 천천히 굳어지며 유리용기가 된다.
에스엠씨지는 2022년 전기용해로를 활용한 자동화 생산공정 도입을 마무리했다. 하루 생산 가능한 유리용기는 50톤, 365일 연중무휴로 가동했을 때 연간 생산량은 약 15만톤이다. 계산대로라면 최대 2000억원 규모의 수요를 감당할 수 있다는 게 최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2022년 전기용해로를 이용한 자동화 설비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면서 생산설비를 증설할 필요가 당분간 없게 됐다"며 "연간 2000억원 규모의 수요도 받아낼 수 있는 설비를 만들었지만 매출 목표는 보수적으로 계산해 2028년 매출 800억원으로 설정했다"고 말했다.
에스엠씨지의 지난해 예상 매출액은 510억원에 이른다. 작년 3분기 누적 기준 매출액은 408억원으로 이미 2023년 매출액(374억원)을 넘어섰다. 영업이익은 31억원으로 역대 최대 실적이다. 시장의 수요가 받쳐줄 경우 현재 연간 매출액의 4배까지 성장하는 동안 유지·보수를 제외한 생산설비 관련 비용이 거의 들어가지 않으며 수익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GRS 인증 획득…탄소배출 '0'로 국제 경쟁력 강화
전기용해로의 진짜 강점은 유리용기 생산 공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획기적으로 줄여준다는 데 있다. 이러한 장점을 해외에서 인정받으며 관심을 끌어모으고 있다. 최 대표는 "타 업체 대부분이 벙커C유나 가스 등 전통적인 화석연료로 용해로를 운영하고 있는데 우리는 전기용해로를 일찌감치 도입하며 진입장벽을 높이고 있다"며 "탈탄소 및 ESG 기조가 전 세계적으로 강화되며 글로벌 화장품 기업과의 협업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에스엠씨지는 지난 13일 화장품 유리용기 제조기업 최초로 글로벌재활용표준(GRS)을 취득했다. GRS는 원료부터 최종 제품까지 모든 공정의 재활용 정도를 확인하는 국제 인증이다. 재활용 파유리 원료 함량(PCR)을 최소 60%로 유지하며 균일한 품질의 제품을 생산한 것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높은 PCR비율은 원가율 절감으로 이어지며 수익성 제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유리를 수제작으로 생산하던 최 대표가 오랜 시간 구축한 노하우의 산물이다. 그는 "PCR 비율을 끌어올린 것은 원가를 절감하기 위한 노력에서 시작한 것인데 운 좋게 국내외 뷰티 기업들의 친환경 기조가 강화됐다"며 "국내 경쟁기업도 전기용해로를 도입한 사례가 있지만 높은 수익률과 품질을 유지하며 수익률 제고에 성공한 것은 우리 뿐"이라고 강조했다.
에스엠씨지는 2028년 매출 800억원을 목표로 설정하며 영업이익률은 20%를 기대하고 있다. 일반적인 국내 제조업의 영업이익률이 10% 내외임을 감안하면 획기적인 수준이다. 모두 친환경 요소 강화와 원가 절감을 동시에 연구한 덕분이다.

◆"상장 후 국제 무대서 인지도 끌어올릴 것"
최 대표는 오랜 시간 일궈온 에스엠씨지에 대한 자부심을 숨기지 않았지만 겸손함 역시 지키고 있었다. 이미 국내외 유명 뷰티 브랜드와 제조자개발생산(위탁생산, ODM) 계약을 체결했거나 논의 중임에도 일반 공모상장이 아닌 스팩 상장을 선택했다. 인지도로 보나 회사 규모로 보나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에스엠씨지는 이미 존슨앤존슨과 로레알 등 해외 유명 뷰티 브랜드의 제품 용기를 생산 중이다. 국내에서도 아모레퍼시픽, 이니스프리, 비나우 등 굵직한 기업 다수에 유리용기를 공급하고 있다. 친환경 화장품용기에 대한 관심이 계속 늘면서 플라스틱 대신 재활용이 쉬운 유리용기에 대한 수요는 계속 늘어나며 알려진 브랜드와의 협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에스엠씨지는 키움제7호스팩과 합병을 통해 코스닥시장 상장을 진행 중이다. 합병가액은 3100원, 총 매수청구 수량은 86만5176주다. 합병비율은 1대 0.6451613으로 상장 후 시가총액은 약 570억원이다. 지난 18일 합병을 마치고 오는 3월 7일 코스닥 시장에 상장할 예정이다. 당분간 생산설비 투자가 없는 만큼 기업 알리기에 집중할 계획이다.
이미 지난달 말 열린 파리패키징위크(PPW)에 에스엠씨지 부스를 열고 참가해 주요 고객사와의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오는 12일과 13일 미국 로스앤잴레스(LA)에서 예정된 글로벌 화장품 기업간거래 (B2B) 전시회 럭스팩(Luxpack Los Angeles)에도 참여해 글로벌 성장을 도모한다.
최 대표는 "에스엠씨지의 상장을 주관한 키움증권과 협의한 결과 상대적으로 국내에서 부족한 만큼 스팩 상장이 안전하다고 판단했다"며 "국내에선 유일하게 틴트나 립글로스, 립스틱, 마스카라 등을 담은 10ml 이하 유리용기부터 특수 화염처리 기술이 필요한 350g 이상의 고중량 향수병까지 다양한 제품군 생산 능력을 보유한 만큼 앞으로 빠르게 인지도를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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