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사 특수 환경에 '책임경영'·'고육지책' 해석

[딜사이트 구예림 기자] 스튜디오드래곤과 자회사인 길픽쳐스 간의 관계가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박민엽 길픽쳐스 대표가 약 30억원의 사재를 털어 길픽쳐스 운영자금으로 대여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이를 단순한 책임경영 차원을 넘어 스튜디오드래곤과의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나온 결정으로 해석하고 있다.
2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박 대표는 이달 6일 길픽쳐스에 28억원을 대여했다. 대여금의 차입기간은 내년 1월3일까지다. 길픽쳐스는 스튜디오드래곤의 100% 자회사로 스튜디오드래곤이 2022년 9월 약 320억원에 인수한 드라마 제작사다.
길픽쳐스는 박 대표가 2017년 설립한 제작사로 스토브리그, 소년심판 등 히트작을 제작하며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스튜디오드래곤은 길픽쳐스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 순자산가치(32억원) 대비 약 10배의 프리미엄을 얹은 320억원에 인수했다. 당시 인수금액 중 영업권은 288억원으로 책정됐다. 영업권은 기업의 순자산가치를 초과해 지급된 금액으로 스튜디오드래곤이 길픽쳐스의 제작 역량과 잠재성을 높게 평가했음을 보여준다.
스튜디오드래곤은 인수 직후인 11월 박 대표를 대상으로 3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독 배정했다. 이는 지분 매각으로 길픽쳐스와 박 대표 간의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사라졌음에도 박 대표가 스튜디오드래곤 주주로서 길픽쳐스의 경영에 책임감을 부여하려는 조치로 읽힌다. 드라마 제작사는 대표와 작가 등 인력이 핵심자산인 만큼 경영진의 역량을 공고히 하기 위한 장치로도 해석된다.
당시 박 대표는 할인율이 적용되지 않은 1주당 6만7700원의 가격으로 스튜디오드래곤 주식을 인수했다. 하지만 이달 20일 종가 기준 스튜디오드래곤의 주가는 약 3만8500원으로 당시 가격 대비 43.1%나 하락한 상태다.
문제는 박 대표가 30억을 태우며 스튜디오드래곤의 주주가 된 이후 길픽쳐스의 실적도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는 점이다. 길픽쳐스는 2022년 매출 144억원과 순이익 8억5000만원을 기록했지만 이듬해 매출은 8억원, 순손실은 6억원으로 내려앉았다. 작년 3분기 누적 매출은 2억9000만원, 순손실은 3억1000만원으로 실적 부진이 계속되고 있다.
이는 길픽쳐스가 최근 몇 년간 뚜렷한 흥행작을 내지 못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2022년에는 소년심판, 더 패뷸러스 등 히트작을 배출했지만 2023년부터는 딜리버리(납품) 작품이 전무한 상황이다. 작품이 없으니 수익도 발생하지 않는 악순환에 빠진 셈이다.
결국 작품 공백이 길어지면서 길픽쳐스는 운영자금 부족 사태에 직면했다. 이에 박 대표는 길픽쳐스의 경영을 이어가기 위해 개인 자금 28억원을 대여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에 따라 스튜디오드래곤 주식과 길픽쳐스 운영에 묶인 박 대표의 자금은 약 60억원에 이른다.
시장에서는 박민엽 대표의 이번 사재 대여를 어쩔 수 없는 방편으로 보고 있다. 스튜디오드래곤 주가가 하락하고 길픽쳐스의 실적 부진이 지속되는 가운데 박 대표가 책임경영 차원에서 사재 투입이 불가피했다는 분석이다.
시장 한 관계자는 "박민엽 대표가 길픽쳐스의 경영을 이어가기 위해 개인 자금을 투입한 것은 본인의 재산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전략일 가능성이 크다"며 "길픽쳐스가 실적 부진에 빠진 상태에서 모회사 스튜디오드래곤이 직접 자금을 지원하기에는 부담이 있을 수 있다. 결국 박 대표는 길픽쳐스의 회생이 자신의 투자가치를 보호하는 길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스튜디오드래곤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박민엽 대표가 책임경영 차원에서 길픽쳐스에 단기 대여를 결정한 것"이라고 짧게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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