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이소영 기자] 연초부터 회사채 발행시장이 뜨겁다. 지난해 12월 발생한 비상계엄 사태로 촉발된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았지만 회사채 시장은 활기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미매각 우려가 나왔던 건설업종과 석유화학업종 회사채도 완판 사례를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BBB급 비우량채의 주문액도 모집액 수준을 넘긴 모습이다.
채권업계에서는 다음달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커진 만큼 기준금리를 웃도는 수익률을 제공하는 채권에 대한 투자 수요가 더욱 강세를 보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20일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이달 17일(전 거래일) 'AA-급 3년 만기 회사채와 3년 만기 국고채의 채권 시가평가 수익률 차이(신용 스프레드)'는 65bp(1bp=0.01% 포인트)로 집계됐다.
지난해 비상계엄 발생 직후(2024년 12월 4일) 59bp였던 신용 스프레드가 지난해 말(2024년 12월 31일) 69bp까지 확대된 이후, 이달 초부터 축소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통상 신용 스프레드가 축소된다는 건 채권 투자를 나서는 투자자들의 자금 유입의 강도가 세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 비우량·비선호 업종도 수요예측 완판
연초 투자자들의 투자 수요가 커지며 AA급 회사채의 경우 지난해 대비 수요예측 주문액이 1조원 이상 증가했다.
이달 한화에어로스페이스(AA-)의 경우 2000억원 규모 회사채 모집에 2조5100억원의 주문을 받았다. 이는 지난해 수요예측(2000억원 모집, 1조4200억원 주문)과 비교해 주문액 규모가 1조900억원 늘어난 수준이다. LG유플러스(AA0) 역시 이달 3000억원 모집에 3조500억원 주문을 받았는데 작년(2500억원 모집, 1조7100억원) 대비 1조3400억원 규모 자금을 더 모았다.
이같은 추세는 신용등급이 우량한 기업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비우량한 기업이거나 비선호 업종 기업 역시 투자 수요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로 인해 미매각을 겪었던 HL D&I 한라(BBB+)의 경우 710억원 모집을 위한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1560억원의 주문을 받았다. BBB급 두산(BBB/BBB+) 역시 모집액의 8배가 넘는 자금을 모았으며 증액 발행을 결정했다.
김은기 삼성증권 연구원은 "작년과 비교해 보면, 회사채 수요예측 규모는 비슷하지만 경쟁률은 상승하고 발행 스프레드는 더 낮아지면서 작년 대비 올해 발행시장이 더 강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미매각 우려가 나왔던 석유화학업 등 비선호 업종 기업의 수요예측 역시 모두 선방한 결과를 보였다. 석유화학업종 기업 중에서 가장 먼저 회사채 발행에 나섰던 SK인천석유화학(A+)은 1500억원 모집에 3500억원의 주문을 모았다.
지난달 등급전망이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되면서 투심 위축이 우려됐던 LG화학(AA+)은 3000억원 모집에 6배에 달하는 주문(1조6750억원)을 받는 데 성공했다. 이에 최대 6000억원 증액 발행을 검토 중이다. 한솔케미칼(A+)역시 목표액 500억원보다 약 13배 많은 수요인 6610억원 수준의 주문이 접수됐다.
다만 HD현대케미칼(A)의 경우 목표액은 채웠으나 금리는 다소 높은 수준에서 형성됐다. 2년물(400억원)에 1660억원, 3년물(500억원)에 2000억원의 자금을 모았지만, 금리의 경우 ▲2년물 +30bp, ▲3년물 +48bp 등 민평금리를 웃도는 수준에서 모집액을 채웠다. 현재 HD현대케미칼은 '부정적' 등급전망 딱지가 붙어있다.
◆"1분기 금리 인하 가능성, 작년 시장상황 학습효과"
채권업계는 이 같은 연초 회사채 수요 강세 현상과 관련해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먼저 1분기(1월~3월) 내 기준금리 인하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박경민 DB금융투자 연구원은 "국내의 경우 경기 부진 우려 탓에 한국은행이 올해 1분기 내 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며 "이에 따라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자 수요 역시 유효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작년 시장상황의 학습효과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재작년 말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에 따라 작년 1월부터 연초효과가 현실화되지는 못했지만, 2~3월부터 본격적으로 신용 스프레드 축소가 진행됐다. 투자자들은 올해도 부정적 변수가 남았음에도 관련 악재만 해소되면 작년과 같은 흐름이 재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 미리 채권 투자에 뛰어드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상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올해 연초효과는 지금 따라가지 않으면 놓칠 수 있다는 일종의 조바심이 작용한 결과"라며 "단기물로 쏠림이 유난히 강한 것이 이 같은 이유를 뒷받침한다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더해 작년 말 큰 규모로 유출된 채권 자금이 연초에 빠르게 재유입되고 있다는 분석도 뒤따른다.
김은기 삼성증권 연구원은 "작년 말 채권형 펀드 자금은 12월 말까지 약 10조원의 자금이 유출됐으나, 지난주까지 7조원가량의 자금이 재유입되는 등 비교적 채권 자금이 빠르게 들어오고 있다"며 "이같은 점이 연초 회사채 발행 및 유통시장의 강세를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채권 전문가들은 앞으로 회사채 투심은 더욱 강세를 나타낼 것이라고 공통으로 전망하고 있다.
최성종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은행이 1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해 2월 인하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기준금리를 웃도는 채권에 대한 수요가 이어지며 강세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며 "지난주 19개 기업이 수요예측에서 안정적으로 자금 모집에 성공했던 것처럼, 이번 주 수요예측에 나설 8개 기업 역시 모집액을 웃도는 수준에서 자금 조달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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