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태 회장, 대한항공 예상밖 '소폭 인사' 왜?
딜클로징에도 예년 승진 규모…業 특성상 경력 중요, 아시아나 직원 자극 최소화
이 기사는 2025년 01월 20일 06시 00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제공=한진그룹)


[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대한항공이 올해 정기 임원인사에서 대규모로 승진자를 배출할 것이라는 전망이 빗나갔다. 우기홍 대한항공 대표이사를 부회장으로 승진시키며 체급을 키우긴 했지만, 고위직 인사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업계는 이번 인사를 두고 오랜 경험과 노하우가 중요한 항공업 특성이 반영된 데다, 아시아나항공과의 화학적 결합을 의식한 결정이라고 분석한다.


◆ 부회장 등 총 18명…체급 키웠지만 전년보다 승진자 줄어


17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한진그룹이 16일자로 단행한 정기 임원인사에서 대한항공은 총 18명의 승진자가 나왔다. 먼저 우 대표가 부회장으로 영전했다. 대한항공이 항공사업 지배구조 최상단에 자리 잡은 만큼 우 대표를 승진시켜 리더십을 한층 강화하는 동시에 무게감을 더했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말 아시아나항공을 자회사로 편입시키면서 4년간 진행해 온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을 마무리 지었다. 이에 한진그룹 내 항공 관련 계열사는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진에어·한국공항→에어부산·에어서울·아시아나에어포트·아시아나IDT 등'의 지배구조를 그리게 됐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대한항공에서 사장 승진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부사장 승진자는 2명에 그쳤으며 전무와 상무는 각각 3명, 12명이었다. 대한항공이 지난해 2월 실시한 임원 인사 당시 승진자가 총 22명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축소됐다.


대한항공 본사 전경. (사진=딜사이트)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결정한 이후 2021년도 임원인사(2020년 말 실시)부터 승진 규모를 제한해 왔다. 그해 초 발발한 코로나19 팬데믹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조직 변화를 최소화하는 한편, 아시아나항공과의 기업결합 심사 진행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2020년 12월 임원 인사의 경우 승진자 없이 일부 임원의 보직 이동만 이뤄졌다. 2021년 인사는 해를 넘긴 2022년 1월에 발표됐는데, 총 15명의 승진자가 나왔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이 계열사 대표로 이동했고, 대한항공 내부로만 보면 승진자는 단 2명뿐이었다. 2023년 1월에는 부장 2명이 상무로 승진한 것이 전부였다. 그나마 지난해 해외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심사에 속도가 붙으면서 승진 규모가 확대됐지만, 부사장급 이상은 1명이었다.


대한항공이 최근 아시아나항공 딜클로징(거래종결)을 완료한 만큼 올해 임원 인사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통합 대한항공'을 준비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상당 기간 임원 인사가 소극적으로 이뤄진 데 따른 인사 적체 현상도 해소해야 할 문제였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올해도 예년 대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준의 인사를 실시했다.


◆ 경험·노하우 중요, 세대교체 쉽지 않아…'점령군' 이미지 부작용 우려도


대한항공의 보수적인 인사는 항공업 고유의 특성에서 기인했다. 정량적인 성과 지표도 중요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오랜 실무 경험으로 축적된 인적 네트워크와 노하우 등이 승진 여부를 좌우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특히 1969년 대한항공 설립으로 시작된 국내 항공산업 역사가 길지 않은 만큼 세대교체가 쉽지 않다. 예컨대 대한항공은 조원태 회장 체제로 전환하기 전까지 임원 직위 체계를 6단계(사장·부사장·전무A·전무B·상무·상무보)로 구분했는데, 임원 개개인의 역량과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이었다.


고(故) 조양호 명예회장 시절을 돌이켜보더라도 임원들의 승진 시계는 매우 천천히 흘러갔다. 예컨대 조 명예회장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강영식 전 한국공항 대표는 2007년 말 부사장을 달았는데, 입사 36년차였다. '항공 정비 전문가인' 강 전 대표는 입사 46년 만인 2017년 사장에 올랐다. 반면 비(非)항공 전문가의 경우 비교적 승진이 빨랐다. 한진그룹 전문경영인 중 초고속 승진 기록을 보유 중인 석태수 전 한진칼 대표는 1984년 입사해 25년 만에 부사장으로 승진했으며 2013년 사장, 2018년 부회장(대한항공 한정)을 달았다. 그는 조 명예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은 기획·전략통으로 꼽힌다.


대한항공 부사장 이상 임원 현황. (그래픽=신규섭 기자)

올해 대한항공 부사장 승진자인 엄재동 화물사업본부장과 박희돈 경영전략본부장 겸 경영지원실장의 경우 올해 각각 입사 38년차, 입사 35년차다. 이날 기준 두 사람을 제외한 대한항공 부사장은 6명이며, '정통 대한항공맨'(외부 영입 제외)의 평균 근속연수는 약 37년이다. 통상적인 대한항공 사장 승진 년수보다 짧다는 게 중론이다.


대한항공이 내년 말을 목표로 아시아나항공과의 완전 합병을 준비 중인 만큼,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의 반발감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로도 읽힌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을 자회사로 편입한 이후 원유석 대표를 비롯한 주요 임원들과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다. 아시아나항공 임원을 에어부산 등 계열사로 내려보내기도 했다. 아시아나항공 임직원에게 점령군 이미지를 인식시키지 않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상황에서, 대한항공만의 '임원 잔치'가 자칫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조 회장이 16일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아시아나항공 회장 조원태"라며 "우리의 통합은 한 회사에 다른 회사가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드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 배경도 같은 맥락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차세대 리더를 육성하는 과정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며 "조 회장이 아직 40대 후반으로 젊은 만큼 임원들의 승진 인사를 긴 호흡으로 접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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