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구조조정SK온 재무부담, 그룹으로 확산할까
[딜사이트 김규희 기자] SK그룹 리밸런싱 중심에는 SK온이 있다. 그룹 차원에서 '11번가 사태' 해결에 나선 것도 SK온과 관련이 있다는 게 투자은행(IB)업계 시각이다. SK온의 사업확장을 위해 추가 자금조달이 절실한 상황인데 11번가 사태를 이대로 방치하게 되면 SK그룹은 재무적투자자(FI)로부터 완전히 신뢰를 잃게 된다.
SK온은 SK그룹의 미래 먹거리로 꼽히지만 여전히 어려운 상황을 이어가고 있다. 그룹이 배터리사업에 지금까지 40조원 넘게 자금을 쏟아부었지만 성과를 보지 못했다. 대규모 투자가 지속되면서 재무구조도 흔들리고 있다. SK온은 총차입금만 20조원을 넘어섰고 이에 따라 금융비용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글로벌 전기차 수요 둔화가 계속되고 있어 현금창출력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SK온 재무 위기가 자칫 그룹 전반으로 번질 우려가 있다는 의견이 시장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으로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상황에서 유동성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어서다.
◆ '11번가 사태' 목격한 FI, SK온 불안감 '고조'
SK온은 지난 2021년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물적 분할한 이후 자금조달을 위해 프리IPO를 실시했다. 한국투자프라이빗에쿼티-이스트브릿지파트너스가 FI로 나섰다. 이들은 두 차례에 걸쳐 총 1조2000억원을 투자했다. 스텔라인베스트먼트도 75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펀드를 조성해 자금을 공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해외 FI도 다수 참여했다. MBK파트너스, 블랙록, 힐하우스캐피탈, 카타르투자청 등으로 이뤄진 MBK컨소시엄이 약 1조5000억원을, 사우디아라비아 국립은행 자회사인 SNB캐피탈이 약 1900억을 투입했다. 프리IPO 라운드에서 SK온이 FI로부터 조달한 누적 투자액은 3조원에 달한다.
SK온과 FI가 맺은 계약에는 콜앤드래그 조건이 들어있었다. SK온이 오는 2026년(최대 2년 연장 가능)까지 내부수익률(IRR) 7.5% 이상 등 조건으로 상장(IPO)하지 않을 경우 SK온 최대주주인 SK이노베이션은 FI 지분에 대한 콜옵션을 행사한다는 조건이다. 콜옵션을 포기할 경우 FI는 SK이노베이션 몫 지분까지 함께 매각할 수 있는 동반매도요구권(드래그얼롱)을 발동할 수 있다는 조건도 있다.
문제는 FI들이 벌써부터 SK온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IPO 마감 기한이 2년 가까이 남았지만 밸류에이션 등에 의구심을 품는 시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난해 발생한 '11번가 사태'가 SK온 FI들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 SK그룹 투자전문 중간지주사 SK스퀘어는 자회사 11번가 콜옵션을 포기했다. 드래그얼롱을 발동하기 전 최대주주가 콜옵션을 행사한다는 암묵적인 룰을 깬 것이다. 11번가 밸류에이션이 기대에 한참 못미치자 SK스퀘어는 FI 지분을 되사들이는 대신 책임을 떠넘기는 것을 택했다.
시장은 크게 동요했다. SK그룹을 믿고 11번가에 5000억원을 투자했던 FI들이 대거 손실을 입었기 때문이다. FI들은 11번가 매각에 나섰지만 아직까지 원매자를 찾지 못하는 중이다. 여기에 '티매프 사태'까지 겹쳐 매각은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전례 속에 미국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며 전기차 배터리사업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커진 점도 FI들의 불안감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지를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다. IRA가 폐지되면 미국에 배터리 공장을 건설했던 국내 기업들은 생산 보조금을 받지 못하게 된다. 세액공제 폐지로 전기차 수요가 대폭 줄어들어 실적 부진이 더 장기화될 수 있다.
시장 대부분은 11번가와 달리 SK그룹이 SK온에 미래를 걸고 있는 만큼 콜옵션 행사를 포기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전기차 캐즘이 올해도 지속되고 있고 전기차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 정부 정책이 변화할 가능성이 커져 SK온 FI들의 불안감은 가시지 않고 있다.
◆ SK온 위기, 모회사 SK이노 등으로 확산
SK그룹은 미래 먹거리인 전기차 배터리사업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다. 배터리 업계 후발주자였던 만큼 대규모 투자를 통해 빠르게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다.
2015년 배터리‧소재에 1413억원을 투입한 SK그룹은 이듬해인 2016년부터 투자를 본격화했다. 누적 투자액을 4343억원으로 늘린 뒤 2017년엔 1조8254억원으로 확대했다. 투자금액은 2018년엔 1조8640억원, 2019년엔 5조9869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물적분할한 이후부터는 투자금을 대폭 늘렸다. SK이노베이션에서 떨어져 나온 SK온은 배터리 공장 3곳(서산공장 증설, 미국 조지아주 2곳) 등을 짓기로 하면서 누적 투자금을 20조원 규모로 키웠다.
막대한 투자금은 SK온 재무 부담으로 되돌아왔다. SK온의 총차입금 규모는 2021년 말 4조5000억원에서 지난 2023년 말 19조원으로 치솟았다.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는 20조6000억원을 찍으면서 20조원을 돌파했다. 출범 3년 만에 총차입금이 5배 가까이 증가한 셈이다. 부채비율 역시 같은기간 160%에서 188%로 상승했다.
총차입금 증가는 곧 금융비용 증가로 이어졌다. SK온은 매년 막대한 이자비용을 지급하고 있다. 지난해 초부터 9월 말까지 지금한 금융비용은 6426억원에 달한다. 이는 전년 동기 3542억원 대비 2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SK온 재무부담은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으로 확산했다. SK이노베이션 총차입금은 지난해 3분기 33조원을 넘어섰다. 2023년 말 30조5350억원에서 3분기 만에 10% 가까이 증가했다. SK온의 배터리사업에 대한 자본적지출(CAPEX) 및 운전자금 부담이 SK이노베이션 현금흐름에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상황에서 SK그룹은 재무부담이 그룹 전반으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SK이노베이션-SK E&S 합병을 진행했다. 매년 1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거두는 SK E&S를 SK이노베이션에 붙였다. 그룹 차원에서 어떻게든 SK이노베이션의 둔화한 현금창출력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게다가 부침을 겪고 있는 SK온의 심폐소생을 위해 뛰어난 현금창출력을 가진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SKTI), SK엔텀도 추가했다. SKTI는 매년 4000억원가량의 현금창출력을 가진 원유·석유화학 제품 트레이딩 계열사다. SK온에 SKTI가 합병되면서 SK온 재무구조가 개선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IB업계 관계자는 "SK그룹은 그룹의 미래를 책임질 배터리사업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지배구조도 개편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자칫 SK온 부진이 장기화하면 위기가 그룹 전반으로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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