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진철 편집국장] 국정 혼란이 이어지는 상황 속에서 673조3000억원 규모의 내년도 정부 예산안이 지난 1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비상계엄 사태로 경제에 후폭풍이 몰아치는 가운데 '경제는 정부와 여야가 협력해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기대는 헌정 사상 최초의 '야당표 감액 예산안'이 확정되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매년 정부가 예산안을 발표할 때 '성장', 포용', '확장', '긴축' 등 재정 집행의 목표를 담은 캐치프레이드도 찾아볼 수 없다. 여야 협의없이 야당은 예산안을 강행 처리했고, 정부와 여당은 무기력했다.
내년도 정부 예산안은 공무원·군인의 월급은 물론 국회의원들이 받는 월급, 수당 등 세비도 포함돼 있다. 여기에 내년 불확실한 경제 전망을 감안하면 소외·취약 계층 지원을 통해 민간 경기를 살리는 마중물 역할도 해야 한다. 당초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보다 4조1000억원 줄인 것을 의식한 듯 우원식 국회의장은 예산안이 통과된 직후 "정부는 내년도 예산집행이 시작되는 즉시 추경 편성 준비에 착수해달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야당표 감액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챙기지 못했던 의원들의 선심성 지역구 챙기기 쪽지 예산을 추경안에 포함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비상계엄 사태는 그렇지 않아도 울고 싶은 한국 경제를 달래주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뺨을 때린 격이다. 각국의 반도체 패권 경쟁이 격화하면서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반도체는 위기론이 확산하고 있고, 철강·석유화학 등은 중국의 경기둔화 여파로 고전을 넘어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특히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글로벌 통상정책 변화라는 거대한 쓰나미 대응을 어떻게 할지 걱정이 태산이다.
기업들의 위기는 곧바로 내수 경기 침체로 이어지고 있다. 기업 실적악화와 구조조정이라는 흉흉한 분위기 속에 서민들은 지갑은 더욱 굳게 닫고 있다. 연말 성수기를 기다려온 자영업자들에게 비상계엄 사태가 직간접적으로 치명타를 입히고 있다.
주식시장이 급락하면서 기업들의 피해도 현실화하고 있다. 증시 입성을 준비하는 기업들이 공모시장 위축을 이유로 줄줄이 기업공개(IPO)를 취소하거나 연기해 자금조달에 차질을 빚는가 하면 두산그룹은 계열사 주가가 단기급락하면서 계획했던 지배구조 개편을 철회하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비상계엄 사태가 경제에 미칠 후폭풍이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이다. 포브스가 "계엄령 시도의 대가가 한국의 5100만 국민이 시간에 걸쳐, 할부로 치르게 될 것"이라고 비판한 것처럼 앞으로 비용 청구서가 하나둘씩 날아오는 것 아닌지 벌써부터 심히 우려된다.
정부 예산안은 결국 기업과 국민 주머니에서 나온 혈세를 쓰겠다는 연간 계획서다. 적재적소 효율적으로 예산을 집행해 경제가 잘 돌아가고 그렇게 번 돈으로 기업과 국민들로부터 세금이 잘 걷히는 선순환 구조가 필수다. 기업과 국민들의 경제가 잘돼야 공무원도 국회의원도 세금으로 제대로 월급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여야가 지금처럼 정치적 손익을 따져 치킨게임을 벌이는 정쟁 대상이 될 수 없다.
내년도 예산이 정치권의 당리당략과 국정 혼란을 틈타 영혼없이 쓰여져선 안될 일이다. 가뜩이나 울고 싶은데 비상계엄이라는 뺨을 맞은 서민 경제가 울음을 그칠 수 있도록 그 마음을 어루만지는데 제대로 쓰여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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