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구예림 기자] "지역의 자부심"
무학을 설명할 때 자주 붙는 수식어다. 경남지역 대표 향토기업인 무학은 오랫동안 지역 소주시장에서 탄탄한 입지를 누려왔다. 하지만 지역 소주라는 특수한 지위를 방패삼아 명성에 안주한 무학의 이면의 행보는 아쉽다.
지난 10월 발표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성적표는 무학의 경영 실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한국ESG기준원이 매년 발표하는 ESG 종합등급에서 무학은 올해 낙제점인 'D' 등급을 받아들었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최근 3년간 무학은 C와 D 등급을 반복하며 최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실상 ESG경영 개선을 이뤄내지 못한 셈이다. 그럼에도 무학은 "어떤 기준으로 평가가 됐는지 모르겠다"는 모르쇠의 반응으로 일관해왔다. 이 같은 무학의 행보는 마치 "ESG는 우리와 상관없다"고 외치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ESG에 그치지 않는다. 오너 리스크 역시 무학의 발목을 잡고 있다. 무학의 오너 일가는 종종 경솔한 발언과 행동으로 논란을 일으키며 지역 주민과 주주들의 실망을 사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 9월 최재호 무학 회장은 정례 기자브리핑 오찬 자리에서 자사 석류 소주를 언급하며 여기자에게 "여성에게 좋은 소주니까 많이 마셔라"는 발언을 했다.
이는 단순한 농담을 넘어 성희롱적 뉘앙스를 담은 경솔한 발언으로 논란이 됐다. 기업 최고경영자로서 윤리 의식과 책임감을 의심케 한 이 사건은 사회적책임(S)을 강조하는 ESG 경영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무학이 이렇게 안일한 경영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지역 소주 시장에서의 안정적인 점유율에 기대어왔기 때문이다. 경남과 부산 지역을 기반으로 독점적인 시장 지위를 구축했던 무학은 2010년대 초반 이 지역에서 70%를 웃도는 점유율을 기록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러한 시장 장악력이 무학의 자신감으로 이어졌고, 책임경영보다는 안일한 태도를 지속하게 된 배경이 됐다.
그러나 지역 소주 시장은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다른 지역 브랜드와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은 물론 주류 시장 자체가 소비자 취향 변화와 건강 중심 트렌드에 따라 재편되고 있다. 무학이 과거의 영광에만 머문다면 시장에서 도태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주류 시장의 선두주자들조차 ESG 경영 강화와 조직 쇄신에 나서고 있다. 무학은 ESG 등급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은 물론 지역 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 지역 기업으로서의 자부심은 단순히 점유율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민과 소비자들에게 신뢰받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서 비롯된다.
결국 무학의 문제는 '안일함'에 있다. ESG 경영과 책임의식을 외면한 기업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무학이 지금처럼 지역 소주라는 안정적 점유율에 기대어 스스로를 혁신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지역민들조차 등을 돌릴 날이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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