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끝나지 않은 '캐즘' 극복법
전기차 수요 정체 장기화 전망…경쟁국 대비 정부 지원 확대 필요
이 기사는 2024년 12월 06일 08시 20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그래픽=이동훈 기자)


[딜사이트 송한석 기자] "이제는 전기차 캐즘이라고 부르면 안 될 거 같아요. 캐즘은 일시적 수요 정체인데 기간이 점차 길어지네요."


취재하다 만난 배터리 업계 관계자의 자조적인 말이었다. 전기차 시장은 2023년부터 성장률이 둔화하더니 이제는 2026년 돼야 캐즘이 어느 정도 풀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오죽했으면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대표도 공개적인 장소에서 2026년은 돼야 실적이 반등할 수 있다고 예측했을까.


전기차 캐즘의 원인은 간단하다. 가격이 비싼 데다 충전 인프라가 부족해 편의성이 떨어졌다는 이유다. 코로나19 이후 이상기후의 중요성이 강조되며 전기차 붐이 불었지만, 살 사람은 다 산 탓에 이제 얼리어답터(early adoptor)를 제외한 일반 소비자를 공략할 요인이 부족해졌다. 


특히 캐즘에서 배터리 및 소재 업체들은 전기차 업체에 비해 더 '을'일 수밖에 없다. 어찌 됐든 전기차 업체에 부품을 팔아야 하는데 이제 그들은 소비자들을 공략할 더 싸고 용량이 좋은 배터리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 점은 한국 배터리 업계에는 더 치명적이다. 한국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의 주력 제품은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지만 대세는 중국이 이끌고 있는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로 변하고 있어서다. 전기차 화재 위험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LFP 배터리가 더 안전한 데다 가격 역시 저렴해 전기차 업체들이 많이 선택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한국 배터리 업계도 LFP 배터리 개발에 열을 올리는 동시에 ESS(에너지저장장치)로 눈을 돌리고 있다. 문제는 LFP 배터리 개발 시점이 2026년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현재 수익성이 좋지 않은 배터리 업계는 보릿고개를 1년 이상 더 버텨야 하는 셈이다.


이제 배터리 업계의 노력만으로는 살아남기 힘든 지경까지 왔다. 즉 정부의 직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도 지원이 이뤄지고 있지만 주요국 대비 아쉬운 수준이다. 단적인 예로 2024년 국가 첨단전략사업 전체 R&D(연구개발) 예산 1조984억원 중 배터리 산업 배정은 4.7%인 525억원에 불과하다. 세액 공제는 확대했으나 수혜 기업은 한정돼 있다. 


다른 나라를 살펴보면 일본은 이차전지 생산설비 도입에만 2300억엔(약 2조1600억원), 미국은 이차전지 및 소재 생산에 30억달러(약 4조원)을 지원한다고 한다. 중국은 CATL에만 8억달러(약 1조1300억원) 넘게 보조금을 지급해 준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배터리 업계가 북미에 선제적 투자를 해 지금의 위기를 자초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다. 다만 그들의 선택은 미국의 보조금을 받기 위한 투자였다. 또한 이 부분을 차치하더라도 배터리는 ESS, 우주항공 분야까지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만큼 반도체와 같은 핵심 미래 기술로 평가받는다. 이미 한국은 인공지능(AI) 투자가 늦어져 다른 나라를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까지 뒤처져 있다. 기술적 우위를 아직 지닌 분야마저 뒤처지면 국가 경쟁력이 악화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최근 삼성글로벌리서치로 자리를 옮긴 최윤호 삼성SDI 전 대표가 시행한 '수익성 위주의 질적 성장'이라는 전략이 기억에 남는다. 삼성SDI는 이 전략으로 양호한 재무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다만 캐즘이 장기화된 지금 호평받던 삼성SDI의 상황도 다른 배터리 업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수익성 위주의 질적 성장은 이제 꿈꾸기 힘든 현실이 됐다. 모든 업체가 일단 살아남고 버티는 게 중요해졌다. 그리고 그건 이젠 정부의 지원 없이는 힘들다. 


얼마 전 국회에서 열린 배터리 토론회에서 재밌는 자료를 봤다. 이론적으로 글로벌 전기차 침투율이 15%를 넘어서면 2차 캐즘이 시작된다고 한다. 2023년 말 글로벌 전기차 침투율은 15.8%로 집계됐다. 캐즘의 마지막이 아닌 이제부터 2차 캐즘을 대비해야 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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