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상균 IB부장] 고려아연과 MBK-영풍 연합의 극한 대결이 시작한지도 두 달여가 지났다. 양측의 첨예한 대립은 공개매수가 조정과 가처분 신청, 장외 설전 등 다양한 영역에서 진행 중이다. '한 발짝이라도 밀리면 죽을 수 있다'는 배수진 전략을 앞세운 탓에 누가 승기를 점할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리긴 했지만 현재까지는 MBK-영풍이 확실한 우위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자금력이 승패를 갈랐다는 분석이다.
다만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앞으로도 1년 이상을 질질 끌 전망이다. MBK-영풍 연합이 이사회를 개최해 새로운 등기이사 선임을 시도하는 반면, 고려아연은 여러 법적 수단을 동원해 이를 막으려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결국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임기가 만료되는 2026년 3월까지 지루한 공방이 이어질 수 있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PE업계는 관계자들마다 의견이 제각각일 정도로 심경이 복잡하다. 우선 느끼는 감정은 약간의 당혹스러움이다. PE업계는 펀드에 출자하는 유한책임투자자(LP)들이 자신들의 존재가 드러나길 원치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고려아연처럼 이슈가 불거질 수 있는 상장사 투자에는 비교적 조심스러운 편이었다.
그런데 대한민국 모든 언론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기사를 쏟아내는 상황에 처해있으니 마음이 편치 않을 뿐만 아니라 무엇인가 어색하다는 느낌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올해 20주년을 맞는 PE업계에서 '역대 최대 이벤트'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PE업계에서는 이 같은 고려아연 딜은 현재로선 MBK파트너스만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MBK의 주요 LP들이 캐나다 CPPIB, 캘리포니아 교직원 퇴직연금, 플로리다 퇴직연금, 뉴욕주 공무원퇴직연금 등 해외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국내 LP들로만 구성됐다면 고려아연과 직간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을 확률이 높아 이런 딜을 시도조차 하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부정적인 반응만 있는 것은 아니다. MBK의 이 같은 시도가 PE업계의 투자 영역을 한 단계 넓혔다는 평가도 나온다. 경기 불황의 지속으로 가뜩이나 PE들의 바이아웃 딜이 사라진 마당에 공개매수 및 적대적 M&A라는 새로운 시장을 발굴했다는 평가다. 여기에 상장사의 오너 중 지분율이 낮으면서도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며 회사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는 이들에게 경종을 울렸다는 지적도 제기한다.
MBK의 이번 행보에 대해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며 평가하는 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돈에는 꼬리표가 붙지 않는다'는 말처럼 MBK의 이번 딜 참여를 법적으로 혹은 도덕적으로 비판할 이유가 없다. 사모펀드가 극한의 수익성을 추구하는 모습은 당연하다.
세간에서 여전히 색안경을 끼고 사모펀드를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금융자본의 파워가 점차 거세질 것이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우리가 자본시장의 천국이라 부르는 미국은 이미 금융자본이 산업자본 대비 우위를 점하고 있다. 우리 역시 비슷한 길을 걸을 전망이다.
개척자 혹은 돌연변이들은 기존 무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받는 게 일반적이다. 똑같지 않아서, 하는 행동이 튀어서, 무리의 관습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등. 나중에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변명의 나열뿐이다.
MBK 역시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동종업체들조차 비판을 가하는 고난의 길이지만 10년, 20년 뒤 MBK의 뒤를 따르는 수많은 PE가 늘어날 전망이다. 이번 고려아연 사태에 대한 최종 판단은 그 때 해도 늦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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