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현대자동차그룹(현대차그룹)의 연말 정기 임원인사는 대대적인 인적 쇄신보다는 성과주의에 기반한 조직 안정에 방점을 둘 전망이다. 현대차·기아를 필두로 호실적을 거두고 있는 데다, 미국 대선 이후 경영 환경의 급격한 변화가 예고돼서다.
눈여겨볼 대목은 현대차그룹의 미국 대관 조직 변화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강력한 보호무역 정책을 시행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대미 외교 컨트롤타워를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 현대차·기아 등 대체로 호실적…CEO 유임 가능성 무게
11일 재계 등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이르면 이달 중 사장단(CEO)과 임원 인사를 단행할 계획이다. 과거 현대차그룹은 4대 그룹 가운데 가장 늦은 12월 중순께 정기 인사를 단행해 왔으나, 정의선 회장 취임 이후 인사 시계가 빨라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에는 11월 중순 사장단 정기인사를 단행하며 불확실한 경영 환경에 선제적으로 대비했다.
올해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현대차그룹 주요 계열사 CEO들이 대거 유임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룹사 기둥을 맡고 있는 현대차·기아의 경우 올해 최대 실적을 갈아 치울 가능성이 높고, 일부 계열사를 제외하면 대체로 긍정적인 실적 성장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의 인사 기조는 정 회장 체제로 전환된 이후 성과 보상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현대차는 올 들어 3분기까지 매출 128조6075억원과 영업이익 11조4174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6.3% 성장한 반면 영업이익은 2.6% 감소했다. 하지만 현대차의 수익성 하락은 람다2엔진 품질 관련 비용을 선반영한 데 따른 것이며, 해당 일회성 비용을 포함할 경우 현대차 영업이익은 오히려 전년보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기아는 매출이 6.4% 성장한 80조3006억원, 영업이익도 8.8% 증가한 9조950억원으로 집계됐다.
아울러 현대차·기아는 올해 수립한 연간 영업이익률도 무난하게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연간 영업이익률 8~9%를 제시했으며, 기아는 당초 밝힌 영업이익률 11.9%에서 12%로 상향 조정했다. 현대차·기아 각사 영업이익률은 8.9%, 12.4%로 나타났다. 또 양사 합산 영업이익률은 10.2%로, 글로벌 완성차 1위 기업인 일본 도요타그룹(10.4%)에 이어 2위에 오르기도 했다.
현대모비스는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 받던 낮은 수익성을 극복한 모습이다. 올 3분기 누적 기준 영업이익률이 1%p 상승한 4.9%였다. 현대로템과 현대오토에버, 현대글로비스 등은 우호적인 영업 환경과 수주 확대 등에 힘입어 만족스러운 성적표를 받았다.
◆ 장재훈 현대차 사장, 재신임 '기정사실'…사장단 대부분 정의선 '믿을맨'
현대차그룹 주요 상장 계열사 12개사의 대표이사 가운데 내년 3월 임기가 만료되는 인물은 송호성 기아 사장과 이규석 현대모비스 사장 2명 뿐이다. 송 사장은 기아의 유례없는 이익 성장을 이끈 만큼 교체 명분이 크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 사장의 경우 지난해 말 사장단 인사에서 대표로 취임했고, 경영 성과 역시 합격점이어서 재신임이 유력하다는 관측이다.
정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장재훈 현대차 사장은 재신임이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2021년부터 현대차 대표를 맡아온 장 사장은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의 글로벌 판매 확대에 이어 전기차 전용 브랜드 아이오닉의 성공적인 데뷔 등을 이끌었다. 특히 최근 현대차 인도법인의 성공적인 기업공개(IPO)로 4조5000억원을 조달하기도 했다.
장 사장이 현대차그룹의 미래 비전인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프로바이더' 실현을 위해 수소 생태계 구축을 총괄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정 회장 애착 사업이기도 한 수소사업은 밸류체인 브랜드 'HTWO'를 통해 단순 수소차 제조 뿐 아니라 ▲생산 ▲저장과 운송 ▲활용 등 수소 사업을 전반에서 아우르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특히 그룹사 역량을 총 동원해야 하는 터라 불필요한 리더십 교체를 최소화할 것이라는 시각이다.
주요 계열사 수장들이 정 회장 '믿을맨'이라는 점도 집고 넘어갈 부분이다. 서강현 현대제철 사장의 경우 지난해까지 현대차 최고재무책임자(CFO)로 현대차의 재무건전성을 이끌었다. 현대차 구매본부장 출신인 정재욱 현대위아 사장은 다소 구시대적인 사업 포트폴리오의 대전환을 주도 중이다.
◆ 트럼프 정부 스킨십 강화…엘리트 관료 출신 영입 '주목'
현대차그룹의 이번 인사에서 유독 관심이 쏠리는 포인트는 대관 조직의 재편 여부다. 트럼프 당선인이 조 바이든 현 정권의 정책을 뒤집을 가능성이 높은 만큼 통상 이슈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와의 긴밀하게 접촉하기 위해서는 엘리트 고위 관료 출신 영입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현대차그룹은 일찍이 미국 대관 라인을 강화하며 글로벌 대응력을 키워왔다. 지난해 8월 신설된 현대차그룹의 GPO(Global Policy Office)가 대표적이다. 현재 GPO실장은 윤석열 정부의 초대 의전비서관 출신인 김일범 부사장이 맡고 있다.
김 부사장과 합을 맞추는 인물로는 외교·안보 전문가이자 '미국통'으로 꼽히는 우정엽 글로벌정책전략실장(전무)과 청와대 외신대변인을 역임한 김동조 글로벌정책전략실 상무, 산업통상자원부와 외교통상부 관료 출신인 장재량 글로벌정책전략실 상무, 산업부 재생에너지산업과장을 지낸 김용태 PCO(Policy Coordination Office) 상무 등이 있다.
최근에는 경제안보 전문가인 연원호 전 국립외교원 경제기술안보연구센터장이 GPO 글로벌경제안보실장으로 합류했다. 특히 현대차는 미국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 등을 거친 성 김 전(前) 주한 미국대사를 자문으로 위촉한 바 있다.
나아가 현대차 해외정책팀장 출신으로 각종 태스크포스(TF)팀장을 두루 거치며 '해결사' 역할을 도맡아 온 김동욱 전략기획실장(부사장)의 권한이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현대차그룹의 대관 조직은 김 부사장을 중심으로 ▲해외 대관 ▲국내 대관 ▲정책 분석으로 구분돼 있다.
이와 관련,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인사와 관련된 부분은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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