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민기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최근 계열사 CEO들에게 잘하고 있는 사업은 적극적으로 목소리(vocal)를 내달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이 발빠르게 리밸런싱을 진행하면서 다양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감안해 지속적이면서도 성공적인 추진동력을 마련하기 위함으로 분석된다.
특히 계열사 중에서도 그동안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던 SK하이닉스가 경쟁자인 삼성전자를 뛰어넘으면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어 이와 관련된 목소리를 적극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 반도체 맏형인 삼성전자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한발 뒤에서 눈치를 보던 SK하이닉스가 오히려 삼성보다 더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서고 있다는 평가다.
30일 재계에 따르면 최 회장은 CEO들과 만나 각 계열사들의 성과에 대해 부풀리거나 과장할 필요는 없지만 잘하는 것은 당당하게 알릴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리밸런싱을 진행 중인 SK그룹은 중복 투자와 사업 비효율을 최소화하고, 핵심사업 영역에 역량을 집중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강도높은 그룹 체질 개선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 SK이노베이션와 SK E&S 합병 작업을 포함해 SK 주요 계열사들은 대대적인 조직슬림화에 나선 상태다. SK렌터카는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에 8200억원에 매각 완료됐고 4조원 몸값의 SK스페셜티도 매각 작업이 진행 중이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와 SK엔펄스 등도 매각이 검토되고 있다.
'비상 경영체제'의 SK온은 창사 이후 처음으로 희망퇴직도 받고 있다. SK온은 희망퇴직 신청자에게 연봉의 50%와 단기 인센티브를 지급할 계획이다. SK온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SK온과 SK이노베이션의 '알짜' 자회사인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 SK엔텀을 합치기로 했다. 업계에서는 SK온을 시작으로 각 계열사별로 필요에 따라 본격적인 인력 감축 및 조직 개편 등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로 인해 직원들의 불안감도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과정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이야기가 나오면서 직원들의 로열티도 많이 떨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젊은 직원들의 경우 그룹 총수의 이혼소송으로 인해 회사에 대한 불만도 생기는 중이다. 이에 각 사내 방송을 통해 최종건 창업회장과 최종현 선대회장의 창업스토리가 담긴 영상과 SK그룹의 경영헌법인 'SKMS(SK 경영관리체계)'을 알리는 영상을 꾸준히 방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내부 분위기를 다잡고, SK그룹의 위기 탈출을 위해 최 회장이 적극적으로 사업 성과를 알리라고 주문한 것으로 분석된다. 일례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SK하이닉스의 경우 최근 세계 최초 10나노 6세대 D램인 1c DDR5 개발을 알리는 등 홍보에 적극적이다. 그동안 스페셜티 제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만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보다 앞서고 있다는 인식이 많았지만, 레거시 D램에서도 삼성전자를 앞지르고 1c 제품 개발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알린 것이다.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위상은 막강했다. 아무리 SK하이닉스가 좋은 성과를 낸다고 하더라고 인력 규모나 반도체 캐파(생산능력)에서 삼성을 넘기엔 역부족이었다. 삼성전자가 마음먹고 치킨게임을 통해 경쟁사를 압박하면 원가경쟁력이 약한 SK하이닉스나 마이크론은 버티기 쉽지 않았다. 이에 SK하이닉스는 늘 삼성전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근 삼성전자가 1a 공정에서 극자외선(EUV) 공정 도입 후 성능, 품질, 신뢰성, 전성비 등에서 주춤하고 있고 1b 공정부터 아예 SK하이닉스에 밀리면서 1c의 경우는 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다. 고객사들도 삼성전자 제품보다는 SK하이닉스 제품을 선호하면서 D램 제품 경쟁력에서 삼성전자를 뛰어넘은지 오래다. 오히려 SK하이닉스가 경쟁사 대비 기술력에서 1년 정도의 격차를 내면서 앞서가자 자신감이 붙은 상황이다.
이에 SK하이닉스도 더 이상 삼성전자가 격차를 단기간에 따라잡기 힘들 것으로 판단, 본격적인 양산 전에 제품 개발 단계에서 세계최초 타이틀을 내면서 적극 홍보 중이다. 36GB(기가바이트) HBM3E 12단 신제품을 양산도 세계최초로 시작했다고 알렸다. HBM의 경우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2~3년이 걸린다는 예측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최근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소통 강화에 나섰다. 곽 사장은 8월말 링크드인 계정에 연달아 게시글을 올리며 SNS 소통에 나서고 있다. 곽 사장이 링크드인 계정에 가입한 것은 지난 2014년 7월이지만, 게시글이 올라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계 관계자는 "곽 사장이 SNS를 통해 이처럼 경영 메시지를 잇따라 내놓는 것은 최 회장의 적극적인 홍보를 주문했기 때문으로 보여진다"며 "SK하이닉스 이외에 타 계열사 CEO들도 앞으로 자사의 성과에 대해 좀 더 목소리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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