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오르카 프로젝트, 자칫 '독이 든 성배'된다
폴란드, 신형 잠수함 계약에 '후불' 조건 내세운 것으로 알려져
이 기사는 2024년 09월 13일 10시 20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해군이 운용하는 3000톤급 잠수함 '안무함' (제공=방위사업청)


[딜사이트 박민규 기자] 폴란드에서 최근 열린 동유럽 최대 방산 전시회 'MSPO 2024'에 K-방산 대표 기업들도 속속 참가하면서 한 차례 떠들썩했다. 국제 방산 전시회의 목적은 사실상 세일즈에 있는데, 이번 전시회에서의 화두는 '오르카' 프로젝트로 꼽힌다. 폴란드가 해군 현대화를 위해 신형 잠수함 2~3척을 도입하는 사업으로, 4조~8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잭팟인 만큼 우리 기업들도 일단 뛰어든다는 방침이다.


오르카 사업까지 수주하면 우리나라는 폴란드에 전투기와 전차, 자주포에 이어 잠수함까지 육해공 무기를 모두 수출하게 된다. 하지만 이번에도 '큰 손' 단골을 마냥 두 팔 벌려 환영하면 될까. 이 손님이 '조 단위' 외상을 요구해도 말이다.


특수선 및 방산 업계에 따르면 폴란드는 오르카 사업 쇼트 리스트 선정을 앞두고 우리나라에 '후불'을 계약 조건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 관계자는 "폴란드 정부가 일단 계약부터 하고 보자는 식의 입장으로 안다"고 언급했다. 이에 숏리스트의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한화오션과 우리 정부가 표면적으로는 수주전에 맹공을 펼치면서도 수면 아래에선 무리한 요구라며 난색을 표하고 있단 게 업계의 전언이다.


한화오션 측은 때 이른 우려라며 일축하고 있지만, 실제 폴란드의 상황을 생각하면 이를 낭설로만 치부하긴 어렵다. 폴란드는 국경을 맞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이 발발한 이후 기록적인 수준으로 군비를 증액해 왔다. 재정난이 닥친 와중에도 또 한 번 역대 최대 국방 예산안을 수립한 참이다. 폴란드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내년도 예산 초안에서 국방 예산안은 사상 최대인 1870억즈워티(약 65조원) 규모로, 국내총생산(GDP)의 4.7% 수준이다. GDP 대비 국방비는 2023년부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아울러 폴란드는 무기 도입 계약 액수만 91억달러(약 12조원)에 달한다. 오르카 계획 뿐만 아니라 5세대 스텔스 전투기인 F-35A 라이트닝 Ⅱ 32대 구매(46억달러 규모) 및 32대 추가 구매, F-15 EX나 유로파이터 타이푼 32대 구매, AH-64E 아파치 공격 헬기 96대 구매(10억달러 규모) 등도 검토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폴란드가 이런 지출을 과연 감당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벌써부터 제2의 인도네시아 분담금 '먹튀' 사태를 우려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인니는 지난 2016년 우리 정부,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인 KF-21에 대한 공동 개발 계약을 체결하면서 전체 개발비의 약 20%인 1조7000억원을 분담키로 약속했다. 하지만 분담금 조정과 납부 기한 연장 요청만 이어지다 인니의 분담금은 종국엔 6000억원까지 감소했다.


인니가 내지 못하는 1조원 이상의 비용은 우리 정부와 KAI가 떠안는다. 인니가 당초 논의됐던 대로 KF-21 40여 대를 구입하도록 하기 위해 인니와의 KF-21 공동 개발을 철회하진 않을 것으로 관측되지만, 수출 차질은 피치 못하게 됐다. 전례가 있다 보니, 향후 수주에 성공하더라도 뒷맛이 개운치는 않을 듯하다.


따라서 무리한 요구를 수용하면서까지 불확실성을 떠안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오르카 사업 수주전에 도전장을 내민 기업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오르카 사업이 독이 든 성배라는 업계의 우려가 기우에 불과하다면 다행이다. 폴란드의 최근 요구가 '찔러보기'에 그친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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