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창의 窓]
박힌 임종룡과 굴러온 이복현
모피아 대 검사권력 관점이라면 결과는 뻔해···시장만 스트레스
이 기사는 2024년 09월 12일 08시 23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왼쪽)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그래픽=신규섭 수습기자)


[이규창 편집국장] 변양호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실. 취재차 들렀는데 보고 받는 중이라고 해서 방 밖에서 대기했다. 쩌렁쩌렁한 변 국장의 목소리가 문을 뚫고 나왔다. 자세한 내용까지는 모르겠으나 누구를 질책하고 있는 듯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임종룡 금융정책과장이 나왔다. 잠시 눈인사를 나눴으나 그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그는 금정과장을 거쳐 종합정책과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종합정책국은 추후 한국경영자총협회장까지 지낸 박병원 국장이 관장하고 있었다. 박 국장과 변 국장은 카리스마 넘치는 정통 기술관료들이다. 거의 근무지가 겹치지 않았으나 행정고시 선배 중에는 '관치금융의 화신'으로 불리는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도 있다. 모두 외강내강형 캐릭터다.


이러한 선배들 밑에서 '임 과장'은 내공을 차곡차곡 적립했던 모양이다. 선배들과 달리 외유내강인 그는 5대 금융그룹의 수장을 두 번이나 역임하게 된다. 기획재정부 제1차관과 장관급인 금융위원장도 지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에 내정됐다가 탄핵 정국에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어떤 경제관료 선배들보다 화려한 프로필을 쌓고 있다.


지난해 회장 타이틀을 다시 얻은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손태승 전 회장의 친인척 부당대출 의혹으로 최근 곤경에 처했다. 우리금융은 당초 심사 소홀로 인한 여신 부실화가 금융감독원 보고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가 이복현 금감원장의 연일 강도 높은 비판에 결국 사과했다. 또, 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결과에 대한 조치를 따르겠다고 납작 엎드렸다. 금감원은 우리금융 측이 금융사고를 보고도, 공시도 하지 않았고 늑장 대처했다는 입장이다. 이 원장은 현 경영진의 책임론도 거론하며 임 회장과 조병규 우리은행장을 겨냥했다. 게다가 우리금융의 동양생명, ABL생명 인수 계약을 신문보고 알았다며 인허가 사안인데 소통하지 않았다고도 꼬집었다. 검사 정권 하에 검사 출신인 이 원장이 단단히 화났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병환 금융위원장 등 현직 관료들과 전직 관료들의 방관자 같은 태도가 문득 더 무섭다. 연일 두들겨 맞는 임 회장을 동정하는 익명의 멘트 정도만 언론에서 흘러나온다. 혹시 어차피 검사권력은 잠깐이고 경제 기술관료는 앞으로도 경제, 금융의 주도권을 놓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많은 정권이 초기에 학계, 민간 전문가를 대거 기용했다가 결국 다시 경제 기술자를 찾는 모습을 봐오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역시 모피아(Mofia)다운 처세술이다. 이 관점에서 금감원 보고 대상이 아니라고 했던 우리금융의 초기 변명은 '모피아' 임 회장 답지 않은 하수였다.


어찌됐든 결과는 뻔하다. 임 회장이 사퇴를 하든, 버티든 모피아는 견고하고 검사권력은 부침을 겪게 된다. 모피아가 박혔던 자리에 검사권력이 똬리를 틀 수도 있다. 하지만, 잠시다. 길게 보면 임 회장의 사퇴 여부는 임 회장 개인에게만 중요하다. 


물론, 우리금융 안팎에서는 임 회장이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 빨리 이 사태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갓 출범한 우리투자증권을 안착시키고 보험사 인수를 마무리해야 하는 우리금융이다. 


잠깐 상상을 해봤다. 임 회장이 기어코 경제부총리 타이틀을 얻어 경제 기술관료로서는 사실상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는 모습을. 이런 상상이 가능할 만큼 모피아는 깊게 박혀 있다. 무서운 모피아 선배들 밑에서 쌓은 내공도 있으니까. 다만, 이를 바라보는 금융시장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 원장의 오락가락하는 가계대출 발언도 스트레스를 가중시켰다. 어느 쪽이 이기든 관심없다. 어차피 바뀌는 게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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