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정동진 기자] 인수합병(M&A) 시장 대어였던 에코비트가 예상보다 낮은 금액에 매각되자 투자은행(IB)업계의 관심이 미국계 사모펀드 콜버그 크래비스 로버츠(KKR)에 쏠린다. KKR이 예상보다 저조한 수익률을 기록하면서, 목표 내부수익률(IRR) 달성을 위해서는 보유 포트폴리오 중 일부를 매각해 수익 실현에 나설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다.
IB업계에서는 KKR의 주요 포트폴리오인 무신사, SK E&S 등으로부터 당장의 수익 실현이 어렵다는 것을 감안해, 매각제한이 곧 해제되는 HD현대마린솔루션 잔여 지분에 대한 매각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태영건설 자구안'의 핵심이었던 에코비트 매각전은 지난달 26일 IMM인베스트먼트-IMM프라이빗에쿼티가 총 인수금액 2조700억원에 지분 100%를 인수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맺으며 마무리됐다. 초기에 논의된 3조원 내외의 매각가격을 고려하면 다소 낮은 금액에 거래가 성사된 셈이다.
에코비트는 지난 2021년 KKR의 산업폐기물 소각 전문 에코솔루션그룹(ESG)과 태영그룹 계열사 TSK코퍼레이션이 합작해 만든 회사다. KKR의 지분은 전체 중 50%, 투자 원금은 약 1조3000억원으로 알려졌다.
KKR로서는 이번 딜이 다소 아쉬운 상황이다. 에코비트에 대한 투자 기간이 비교적 짧은 3~4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 시간을 두고 매각할 수 있었지만 태영건설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로 워크아웃이 진행되면서 상황이 변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투자금액보다 낮은 가격에 매각이 진행돼, 수익률 기준으로 손실이 발생했다.
KKR의 다른 한국 내 주요 포트폴리오 상황도 좋지 않다. KKR은 지난해 7월 무신사의 기업가치를 약 3조5000억원으로 평가하고 2400억원 규모의 시리즈C 투자를 진행했으나, 현재 무신사의 장외가치는 3조원 이하로 떨어졌다. SK E&S에 대한 3조원의 RCPS 투자도 최근 SK이노베이션과의 합병에서 불리한 합병비율을 받아들이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IB업계에서는 이러한 배경을 감안하면 KKR이 비교적 안정적인 수익 실현이 가능한 HD현대마린솔루션 지분 매각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KKR이 지난 2021년 HD현대가 보유하고 있던 HD현대마린솔루션 지분 38%를 주당 약 4만3000원에 인수해, 6일 종가(10만2900원) 기준 약 140%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KKR의 매각 의지는 지난 5월 HD현대마린솔루션의 기업공개(IPO) 당시에도 일부 드러났다. 당시 KKR은 공모주 대상 주식(890만주)의 절반을 구주매출할 것을 HD현대마린솔루션에 요구해 시장 참여자들로부터 다소 과도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상장 후 잔여 지분에 대한 매각제한 기간도 6개월만을 설정해, 비슷한 시기 진행된 현대힘스 IPO에서 1년의 자발적 매각제한기간을 설정했던 허큘리스홀딩스(제이앤PE)와 대비되는 모습을 보였다.
현재 KKR의 지분 매각을 제한하던 HD현대마린솔루션과의 주주간 계약은 모두 해제된 상태다. IPO 이전 주주간계약에는 '일정 경쟁 관계가 있는 회사들에 보유 주식을 양도할 수 없다'는 등의 조항이 있었으나, 현재 거래에 관련된 제한사항은 변경을 거치며 모두 삭제됐다. 따라서 KKR의 매각제한이 풀리는 오는 11월 8일 대규모 시장 출하도 가능한 상황이다.
다만 KKR이 보유한 HD현대마린솔루션 지분의 현재가치가 1조1100억원에 달하는 만큼, IB업계에서는 다수의 기업들을 대상으로 블록딜이 진행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시장에서 KKR의 물량을 모두 소화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KKR이 조만간 인수 의향이 있는 원매자를 찾아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HD현대마린솔루션 관계자는 "IPO를 진행하면서 거래소 측에서 특정인에게 지분을 팔 수 없다는 주주간계약을 변경하라고 지시해 현재는 관련 조항들이 없어진 상태"라며 "다만 KKR과 현재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주가나 사업에 악영향을 주는 거래를 하지 않을 거라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딜사이트는 KKR 측에 HD현대마린솔루션 지분 매각 계획 등을 문의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