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에서]
밸류업 하랬더니 지금 뭐하는거죠?
기업이익 독식 위한 공개매수, 상장폐지 '빈번'
이 기사는 2024년 08월 20일 08시 17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딜사이트 김동호 부장] 키움증권, 메리츠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신한지주, 에프앤가이드, 콜마홀딩스, DB하이텍.


이들 기업의 공통점을 눈치했다면 당신은 이미 훌륭한 'K-증시' 투자자다. 이들은 모두 국내 상장사로, 정부의 밸류업 정책에 발맞춰 밸류업 계획을 공시한 기업들이다.


올해 초 정부는 국내 증시의 코리아 디스카운트(저평가)를 해소하겠다며 상장사 밸류업 정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상장사의 자율적인 밸류업 프로그램 참여를 독려하고, 참여 기업들에게 세재 지원 등의 혜택을 주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2500여개가 넘는 국내 상장사 중 밸류업 계획 공시를 한 곳은 단 7개 사에 불과하다. 공시 예고를 한 곳들까지 포함해도 20곳이 안된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2월 26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한국 증시 도약을 위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1차 세미나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제공=금융위원회)

정부가 야심차게 증시 활성화를 하겠다고 나섰지만, 실제 상장사들의 참여는 너무도 저조한 상황이다. 밸류업 계획에 동참할 유인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자사주 매입과 소각, 배당 확대 등 주주환원을 강화해 기업가치를 높이라고 하지만, 상당 수의  상장사 오너는 기업의 이익을 다수의 소액주주와 나누는 것을 원치 않는다. 대놓고 말을 하지는 않지만, '내가 키운 회사'라는 생각을 가진 오너가 대부분이다.


기업공개(IPO)를 통해 다수 투자자의 자금을 끌어모으고, 신성장 동력 발굴, 시설투자, 운영자금 등에 그 돈을 사용했지만 이런 사실들은 모두 과거의 일로 잊은 듯 하다. 상당수 오너들은 상장 이후 성장에 따른 과실을 혼자 독식하려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일례로 지오지아, 앤드지, 올젠, 탑텐 등 다수의 패션 브랜드를 보유한 신성통상의 최대주주 염태순 회장 일가는 최근 공개매수를 통해 상장폐지를 추진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액 주주들은 신성통상이 기업가치에 비해 너무 낮은 공개매수가를 제시했다고 비난하며 응하지 않았다. 또한 그간 양호한 실적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10년 간 단 한 차례만 현금배당을 실시해 주주들의 원성을 샀다.


일부에선 정부가 밸류업 프로그램을 점차 구체화하며 상장사를 압박하기 전에 증시를 떠나 기업 이익을 독식하려 한 것 아니냐는 비난의 목소리도 나온다.


신성통상 외에도 공개매수를 통해 상장폐지를 추진하는 상장사가 속속 늘고 있다. 특히 사모펀드가 대주주인 상장사들의 상장폐지 추진이 늘고 있다. 공개매수를 통해 비상장사가 되면 상장사의 엄격한 공시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고 기업의 이익을 다른 주주들과 나누지 않아도 된다.


실제로 올해 상장폐지를 위해 추진된 공개매수(8건) 중 총 5건이 사모펀드에 의해 추진됐다. 비즈니스온(스카이레이크에쿼티파트너스)과 락앤락(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 커넥트웨이브(MBK파트너스), 제이시스메디칼(아키메드), 쌍용C&E(한앤컴퍼니) 등이 그 주인공이다.


물론 공개매수를 통한 상장폐지가 불법은 아니다. 다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최대주주는 다른 주주보다 지분을 많이 가진 주주일 뿐, 최대주주란 이유로 회사의 주인 행세를 하며 이익을 혼자 차지해서는 안된다. 


정부 역시 허울 좋은 밸류업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말 주주들을 위하고, 상장사의 가치가 높아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진지한 고심이 필요할 때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

관련종목
관련기사
충정로에서 52건의 기사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