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상증법과 밸류업 함수관계
기업 입장에선 밸류업 잘해야 본전, 확실한 혜택 있어야 호응
이 기사는 2024년 08월 01일 08시 11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영국 JP모건 런던지점에서 자본시장 선진화 방안과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모습(사진=금융위원회)


[딜사이트 이호정 산업1부장] # "한국 정부가 추진 중인 밸류업 프로그램은 얼마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나." / "기업 밸류업은 5~10년 이상의 중장기적 시계에서 견고한 시장 성장에 기여하겠지만, 현재도 여러 한국 기업이 (밸류업) 프로그램에 참여를 시작하는 등 이미 상당한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17일, 영국 JP모건 런던지점에서 개최된 한국 투자설명회(IR)에서 밸류업 프로그램 효과에 대한 해외 투자자들의 질의에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이 같이 답했다. 당시 이 소식을 접한 국내 자본시장 전문가들은 김 부위원장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코웃음을 쳤다. 해당 IR이 자본시장 선진화 방안과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홍보하기 위한 자리였던 만큼 성과에 대한 어필이 필요하긴 했지만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실제 국내 코스피‧코스닥 상장기업은 2500곳에 달하는데, 한국거래소 기업 밸류업 통합페이지에 관련 공시를 올린 기업은 10곳에 불과한 상태다. 아울러 10곳 중 4곳은 향후 밸류업 방안을 수립해 게재하겠다는 안내공시다. 게다가 현장에선 지배주주의 이익을 위해 소액주주의 권익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기업 개편 작업도 진행 중이다. 최근만 해도 두산그룹이 두산밥캣을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떼내 두산로보틱스와 합병을 결정했고, SK그룹은 리밸런싱 일환으로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을 밀어붙이고 있다.


# 1974년 12월 4일, 미국 워싱턴DC의 한 레스토랑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인 도널드 럼즈펠드와 그의 보좌관 딕 체니, 월스트리트저널 부편집장 주드 와니스키, 시카고대 경제학과 교수 아서 래퍼가 식사를 하며 세금 정책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당시 좌장 격이었던 럼즈펠드 비서실장은 엉망이 된 미국 경제를 되살릴 방안을 물었고, 래퍼 교수는 냅킨에 그림을 그리며 해결책을 제시했다. 이날 래퍼 교수가 그린 것은 훗날 1980년대 레이거노믹스 감세정책의 초석이 된 '래퍼 곡선'이었다.


래퍼 곡선은 세율과 세수(조세수입)의 관계를 보여주는 그래프다. 세율이 0%나 100%일 때는 세수도 0이 되지만, 중간에 세수가 극대화 되는 최적 세율이 존재한다는 것이 주요 논리다. 다시 말해 세율을 올리면 세수가 무한대 증가하는 것이 아닌 어느 순간부터 감소하는 만큼 세율을 인하해야 근로 의욕 촉진과 비효율적인 조세회피 노력이 줄어 세수가 늘어난다는 설명이다. 영화 배우였던 로널드 레이건은 래퍼 곡선에 근거한 감세정책(레이거노믹스)을 공약으로 앞세워 대통령에 당선됐고, 1981년부터 1989년까지 미국을 이끌었다.


법인세율을 48%에서 34%로, 소득세율을 70%에서 28%로 인하한 레이거노믹스는 미국의 경제호황기를 이끌었다. 전임 지미 카터 정부와 비교해 봐도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연평균 3.2%로 0.4%포인트 상승한 반면, 실업률은 7.2%에서 5.5%로 1.7%포인트나 하락했다. 이 덕분에 1982년 10월 1000포인트를 기록했던 다우지수는 이후 16개월 간 랠리를 이어갔고, 1987년 한때 1700포인트를 넘어서기도 했다.


# 기획재정부가 지난달 25일 발표한 '2024년 세법 개정안'에는 상속세 완화 방안과 밸류업 기업 법인세 인하 등 4조3000억원 규모의 감세안이 포함됐다. 구체적으로 상속세 최고 세율을 50%에 40%로 낮추고, 최대주주 주식 상속 때 주식가치를 20% 높여 평가하는 최대주주 주식 할증 평가 제도를 폐지하는 게 주요 골자다. 아울러 배당을 늘린 기업에 법인세를 깎아주는 내용의 밸류업 대책도 개정안에 포함시켰다. 다만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상속세 세율 인하와 최대주주 할증 폐지, 법인세 완화 등을 '부자 감세'로 규정하며 반대하고 있어, 이번 개정안이 원안 그대로 국회 문턱을 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팽배하다.


생각해 볼 대목은 세금 때문에 주가가 저평가되고 기업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 상황을 정상으로 볼 수 있냐는 점이다. 나아가 기업의 성장을 제한하고 저평가를 초래한다는 상속세나 법인세 같은 제도는 개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 잘해야 본전, 잘못하면 집단소송 같은 송사에 휘말릴 수 있는 밸류업에 기업들이 동참하길 바라는 건 도둑 심보 아닐까.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나 그를 추종해 감세정책을 앞세운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 모두 재임 당시에는 재정악화 등으로 뭇매를 맞았지만, 결과적으로 미국 경제가 장기성장을 이룰 수 있는 밑거름을 제공했다는 것이 시장과 학계의 공통된 평가다. '부자감세 저지'를 대(對)정부 아젠다로 삼은 더불어민주당 역시 세법 개정안에 대해 무조건적인 반대가 아닌 과세 형평성과 실효성의 측면에서 설득력이 있는지 다시 한 번 되돌아보길 바란다. 세재 개편이 전제돼야 김소영 부위원장이 말한 대로 밸류업 실행 주체인 기업으로부터 상당한 반응을 얻을 수 있고, 이렇게 돼야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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