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이솜이 기자] "아시아나 인수합병에 따른 구조조정 계획은 없다. 모든 직원들을 품고 가족으로 맞이해 함께 할 기회를 만들겠다"
조원태 대한항공 회장이 지난 2020년 11월18일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 방향을 묻는 취재진 앞에서 공언한 내용이다. 당시 정부와 산업은행이 표류 직전이었던 아시아나 인수합병(M&A) 열쇠를 한진그룹에 쥐어줬고 취재진들은 일제히 조 회장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터트렸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합병되면 세계 10위권 초대형 글로벌 항공사가 탄생하게 되는 만큼 세간의 이목은 당연히 조 회장과 한진그룹에 쏠렸다.
조 회장이 양사 통합 운을 띄운지 약 4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메가 캐리어' 출범은 마지막 관문으로 미국 경쟁심사 당국의 최종 승인을 남겨뒀다. 대한항공은 미국 정부 승인을 거쳐 이르면 연내 아시아나항공을 자회사로 편입한 뒤 2년 내 통합 항공사로 출범시킨다.
업계는 조 회장이 최근 미국 항공기 제작사 '보잉'으로부터 중대형 항공기 50대 구입을 결정한 행보를 두고 '합병 비용'을 통 크게 치렀다고 평가한다. 이번 구매 계약 금액만 3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합 대한항공' 출범에 대비한 기단 확대 의도도 있었겠지만 미국 당국의 승인을 염두에 둔 베팅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이들의 얘기다.
다만 조 회장이 그리는 메가 캐리어 출범 이후의 미래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직원들이 한 가족이 돼 화합하는 풍경이 담겨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최근 아시아나 조종사 노동조합(APU)은 벨기에 브뤼셀로 날아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 면담에 나섰다. 노조는 이 자리에서 양사 합병 문제점을 설명하고 기업결합 불승인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시아나 조종사 노조가 벨기에행까지 불사한 배경에는 '인력 구조조정' 우려가 뿌리 깊게 깔려 있다. EC가 올 초 양사 기업결합 승인 조건으로 내건 '여객 중복 노선 정리'와 '아시아나 화물사업부 매각'이 도화선으로 작용했다. 노조는 중복 노선 정리로 인력을 재배치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최근 국내 저비용항공사(LCC) 에어인천이 아시아나 화물사업부 인수처로 확정되면서 이들의 고용 불안에 다시금 불이 붙었다. 일부 아시아나 화물기 조종사들은 에어인천으로 고용이 승계될 시 사직하겠다는 의향까지 내비쳤다. 에어인천 최대주주가 사모펀드 운용사인 점을 고려했을 때 에어인천이 지속적인 사업 투자와 고용 유지를 담보하기 힘들다는 논리다.
노조가 통합 대한항공을 불신하게 된 데에는 '소통 부재'가 기름을 부었다. 노조는 대한항공 측에 양사 합병에 따른 직원 고용과 처우 등을 논의하자고 제안했지만 이렇다할 회신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대한항공은 기업결합이 작업이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아시아나 노조를 접촉할 경우 법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피인수 기업인 아시아나 경영진들은 침묵을 최선책으로 삼은 모습이다. 결국 지난 4년 간 이해관계자들 간 소통과 설득은 부재했던 셈이다.
꼬여버린 양사 합병을 둘러싼 불신과 갈등을 해소할 방법은 '백마디 말보다 한번의 실천이 낫다'는 격언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실천하는 방법도 어렵지 않다. 조원태 회장이 4년 전 공언했던 대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직원들이 한 가족이 될 수 있는 기회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해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면 된다. 조 회장에게는 이번 약속을 지키는 일이 리더십을 입증하는 일거양득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아시아나 노조도 조 회장과 대한항공에 굳게 닫혔던 마음의 문을 서서히 열어갈 필요가 있다. 대한항공이 양사가 합병하더라도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다는 메시지를 한결 같이 보내왔다는 사실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부채비율이 2000%를 넘어선 아시아나가 기업 존립을 위한 대안으로 '인수합병'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더는 간과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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