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서재원 기자] "이제 영화 (프로젝트) 투자는 안하려고요. 유통·배급·제작 등 거치고 나면 투자사한테 남는 게 너무 없어요. 과거에는 그래도 손익분기점(BEP)도 적당히 넘기고 투자금 회수기간이 짧다는 장점이 있었는데 요즘은 BEP 넘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사실상 하면 할수록 손해인 셈이죠. 전반적인 하우스 IRR(내부수익률)에도 악영향을 끼치고요"
한때 영화 투자로 이름을 날렸던 벤처캐피탈(VC) 관계자의 한숨 섞인 토로다. 영화 투자에 대한 생각은 해당 VC만의 고민은 아닌 듯하다. 최근 문화·콘텐츠 펀드를 운용하던 VC들이 하나 둘씩 영화 투자에 손을 떼겠다고 하니 말이다. 모 VC는 올해 청산하는 펀드 가운데 유일하게 영화 펀드만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박스오피스 수입을 정산할 때 10%는 부가가치세, 3%는 영화발전기금으로 제외한다. 남은 수익의 약 45%는 극장(유통사)이, 10%는 배급사가 수수료 명목으로 가져간다. 이들 몫을 제외한 금액에서 다시 제작비를 뺐을 때 비로소 순수익이 남는다. 이를 통상 투자사와 제작사가 6:4의 비율로 나눈다. 영화 손실은 온전히 투자사의 몫이다.
물론 투자의 기본은 고위험 고수익이다. 문제는 영화 수익의 대부분을 유통사가 가져가는 탓에 고수익은 사라지고 고위험만 남았다는 점이다. 실제 최근 1146억원의 극장 매출을 올린 '파묘'의 경우 수익구조를 단순 계산했을 때 투자사에게 떨어지는 금액은 200억원 가량에 불과하다. 여기에 극장 외 수입도 반영하긴 하겠지만 위험을 온전히 부담하는 것 치고는 투자사가 재미 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사실 파묘처럼 VC들이 수익을 올리는 경우도 드문 케이스다. 지난해 국내 5대 투자·배급사(CJ ENM, 롯데엔터테인먼트, NEW, 쇼박스,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등)가 내놓은 한국 영화는 총 26편이다. 이 가운데 BEP를 넘긴 영화는 '서울의 봄'을 포함해 '범죄도시3′, '밀수', '잠', '30일' 등 5편에 불과하다. 전체의 15% 가량만 투자 원금 이상의 수익을 거둔 셈이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최근 한국영화 투자 수익률은 ▲2019년 10.9% ▲2020년 -30.4% ▲2021년 -22.9% ▲2022년 -0.3%을 기록했다. 지난해부터는 수익 창출 다변화로 수익률을 따로 공개하고 있진 않지만 2022년과 비교해 크게 회복하진 못했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영화 제작비 상승, 시장 위축 등도 무시 못할 요인이기는 하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결국 영화 산업 주체들 간의 수익 배분에 있다.
투자 없이는 성장도 없다. 그간 VC들은 국내 영화 시장의 큰손을 자처하며 한국영화 발전에 일조해왔다. 특히 대기업 뿐만 아니라 중소제작사에도 일정 비율 투자해 창작의 다양성을 확보하는데 기여해왔다. 이처럼 위험을 무릅쓰는 투자 진영이 위축된다면 자연스레 성장에도 제동이 걸리 수밖에 없다. 영화투자가 산업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고리가 유지될 수 있도록, 분배구조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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