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소영 기자] 금융당국이 채안펀드(채권시장안정펀드)의 운영 기간을 올해 말로 연장했다. 지난해 말 태영건설 워크아웃에 따른 채권시장 자금 경색을 우려한 처방이다. 채안펀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회사채 시장의 유동성 경색을 해소하기 위해 처음 도입됐다.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 물량의 일부를 매입하면서 채권시장의 막힌 혈을 뚫는 효과를 낸다.
채안펀드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2022년 레고랜드 사태 등 유동성 위기 때도 가동됐다. 이 때마다 채권시장의 숨통을 트는 역할을 착실히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채권 매입 대상 기준을 공모채의 경우 신용등급 AA-이상으로 제한해 뒀는데 도입 취지 자체가 '경기 안정'으로 부실기업을 지원하겠다는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채안펀드의 이미지가 점차 퇴색돼 가고 있는 모양새다. 최근 특정 대기업 계열사의 채권만을 매입하는 모양새다. 먼저, 채안펀드는 올해 초 롯데쇼핑(AA-)의 2500억원 규모 회사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에서 3년 만기 모집물량 중 일부를 사들였다.
이어 롯데지주(AA-)의 회사채 수요예측에서도 2년물과 3년물에서 모집물량의 절반(각 450억원, 750억원)가량을 매입하며 자금 조달을 도왔다. 심지어 롯데케미칼(AA0)의 신용보강을 받은 롯데건설(A+)의 회사채 모집물량에도 주문을 넣으며 유동성을 지원했다.
채안펀드는 지난해에도 ▲롯데건설(1200억원) ▲롯데렌탈(500억원) ▲롯데호텔(700억원) ▲롯데하이마트(600억원) ▲롯데쇼핑(300억원) ▲롯데물산(400억원) 등 회사채를 대거 사들이며 자금 지원에 나섰다. 롯데하이마트와 롯데물산 등은 채안펀드 덕에 간신히 미매각을 면하기도 했다.
채안펀드가 SK와 같은 대기업의 자금 조달을 위해서도 도움을 주긴 했지만, 자금 규모에서 큰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롯데그룹에 4000억원 가량을 지원한 데 반해 SK에 지원한 금액은 1000억원에 그치는 수준이다. 이처럼 정부가 채권시장 침체를 우려해 도입한 채안펀드가 특정 대기업 회사채 매입에 치중돼 있다.
실제로 최근 시장에서는 발행 기업이 매입 조건(AA-이상 신용도)을 맞췄음에도 채안펀드의 매입 대상으로 선정되지 않는 일이 부지기수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수혜 범위에서 제외된 합당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특정 대기업 위주로 지원하고 있는 채안펀드를 향한 타 그룹사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채안펀드를 운용하는 펀드 운용사 역시 수익률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만큼 선별적 투자가 불가피하다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본래 도입 취지를 되살려 채권시장의 마중물 역할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도록 여러 기업의 유동성 확보에 도움이 돼야 한다. 첫 단추를 잘 뀄던 채안펀드가 유종의 미까지 잘 거둬야 하지 않을까.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