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전임자 탓' 해봐야
삼성전자, 책임공방 말고 HBM 경쟁력 끌어올려야
이 기사는 2024년 01월 15일 08시 38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가 천안사업장에 HBM 패키징 공장 신설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 천안사업장 전경. (출처=삼성전자)


[딜사이트 한보라 기자] 박리다매는 싼값에 많이 팔아 이익을 보전하는 방식의 판매 전략이다. 대표적인 예시가 빽다방, 메가커피와 같은 저가 프랜차이즈 카페다. 이들은 일반 카페와 비교했을 때 낮은 커피 1잔당 마진율을 판매량이 상쇄할 것으로 가정하고 가게를 운영한다. 


박리다매 전략은 메모리 업계에도 통용돼왔다. 메모리 제조사의 주된 고객인 스마트폰, PC 등 IT기기 제조사는 아주 저급한 기술만 아니라면 더 저렴한 부품을 선택한다. 고도의 연산이 필요하지 않은 만큼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이렇다 보니 메모리 시장 선두를 점하는 기준은 수요가 동반된 막강한 생산 능력이었다. 기술력은 자연스럽게 뒷전으로 밀렸다.


이는 삼성전자가 고대역폭메모리(HBM) 팀을 해체한 이유와 같다. 고도의 기술력이 집약된 HBM은 완성도가 높은 만큼 가격이 비싸다. 2019년 당시 삼성전자는 HBM의 시장 수요가 크지 않기 때문에 향후 주류 제품이 될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 사업 철수에 나섰다. 


그러나 지난해 들어서 상황은 반전됐다. 극심한 메모리 불황 속 생성형 인공지능(AI) 서비스가 새로운 고객사로 등장하면서다. 산업 지형이 바뀌면서 AI 가속기를 만드는 엔비디아를 중심으로 HBM 수요는 급증했다. 심지어 글로벌 하이퍼스케일러들은 성능만 좋다면 반도체 값을 따지지 않고 구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급보다 수요가 커지자 HBM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모든 수혜는 삼성전자와 달리 관련 사업을 유지한 SK하이닉스에 집중됐다. 그 결과 지난해 3분기 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간 D램 매출 점유율 격차는 4.4%까지 떨어졌다. SK하이닉스는 "2024년 HBM 3~4시리즈가 모두 매진(솔드 아웃)됐다"는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뒤늦게나마 삼성전자에서도 HBM 사업을 재개했지만 이미 벌어진 기술 격차는 상당했다. 고군분투 끝에 삼성전자가 제품 적합성 테스트를 통과하고 엔비디아와 HBM 공급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던 건 지난해 말이었다. 


고생 끝에 만난 호재지만 내부 분위기는 여전히 뒤숭숭하다. 우선 시장 선두 지위를 뺏겼다는 데서 나오는 내부 직원들의 열패감이 상당하다. 지난해 DS사업부문이 적자를 면치 못하면서 연초 목표달성장려금(TAI)까지 0원으로 책정됐다. 이런 상황 속 고위급 임원들이 "전임자의 잘못된 판단이 현재의 위기를 불러왔다"는 변명만 되풀이하자 내부 불만은 하늘을 찌른다. 


누군가 말했듯이 전임 수장의 실책에 극심한 다운 사이클까지 일련의 상황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치부하고 끝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잃어버린 경쟁력을 수복하고 실적을 끌어올리는 일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때일수록 냉철한 현실 인식에 뒤따르는 대응책이 필요하다. 단순한 책임 공방으로는 아무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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