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뉴진스와 상생금융
정반합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진정한 '상생금융' 나타날까
이 기사는 2024년 01월 08일 08시 52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출처=Pixabay)


[딜사이트 차화영 기자] "헤겔이 괜히 정반합(正反合)을 얘기한 게 아니더라고요."


'뉴진스의 어머니'로도 불리는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자신만의 트렌드 철학을 풀어놓으며 한 말이다. 그는 소녀시대, 샤이니, 에프엑스 등 본인이 콘셉트를 주도했던 아이돌의 성공을 지켜보며 대중문화 트렌드에도 헤겔의 변증법 논리인 정반합이 적용된다고 생각했고 이를 바탕으로 뉴진스라는 그룹이 탄생했다고 했다.


민 대표가 말하는 정반합은 어렵지 않다. '대중들은 정(正, 기존의 주류 트렌드)-반(反, 주류 트렌드에 대비되는 트렌드)-합(合, 새로운 트렌드) 순서로 싫증을 느낀다.' 한 가지 예로 소녀시대의 'Gee'가 있다. 민 대표는 소녀시대 이전의 걸그룹이 가진 '닿을 수 없는 미소녀', '비현실적인 느낌'(正)의 반대가 뭘까 고민하다가 청바지에 흰 티를 입은 '굉장히 친근한' 소녀시대만의 콘셉트(反)가 탄생했다고 했다.


헤겔이 말하고 민 대표가 성공으로 입증한 '정반합' 얘기가 문득 떠오른 건 최근 한 금융지주 회장의 신년사 때문이다. 그는 "국내외 시장에서 진정한 강자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경쟁과 생존'에서 '상생과 공존'으로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쟁(正)하는 시대에서 벗어나 상생(反)하는 시대로 나아가자는 설명이다. 


'상생'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신년사는 이 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금융지주 회장들도 "사회와 이웃 등과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며 상생의 가치를 지키자", "모든 이해관계자가 상생하고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신뢰받는 동반자로 거듭나자"며 '상생'을 강조했다.


'함께 살자'라니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어딘가 석연치 않다. 이들이 입을 모아 상생을 강조하는 게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점차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것도 맞지만 정부와 금융당국을 의식한 측면도 분명 있기 때문이다. '상생금융'이라는 말 자체가 윤석열 정부가 은행권을 압박한 뒤 자주 귀에 들린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윤석열 정부와 금융당국은 지난해 초부터 금리 인상기 서민들의 이자 부담이 커지고 있다며 은행권에 연일 '상생금융'을 압박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은행권을 향해 '종노릇', '갑질' 등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후 은행권은 '이자 환급(캐시백)' 등 내용이 담긴 모두 2조원 규모의 상생금융 방안을 내놨다.


은행권의 상생금융을 두고 '배임 논란'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상생금융은 실제로 금융 소외계층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를 다음 문제로 미뤄둔다고 해도 규모나 방법 측면에서 자연스럽지 못한 측면이 크다. 은행에게 사회적 책임이 중요하다고 해도 기업인 이상 첫 번째 목적은 돈을 벌어들이고 주주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있는데 지금의 상생금융 외침은 우선순위가 뒤바뀐 듯 과한 측면이 없지 않다.


비슷한 맥락에서 은행권이 언제까지 상생금융에 신경을 쏟을지 걱정도 된다. 지금이야 정부도 눈치를 주고 여론도 은행 편이 아니니 여러모로 상생금융에 관심을 기울인다고 해도 압박도 부담도 사라진다면 과연 그때도 금융지주 회장들이 앞다퉈 상생금융에 힘쓰겠다고 할까?


헤겔은 정반합의 변증법을 역사의 흐름에도 적용했다. 큰 역사적 흐름 뿐 아니라 뉴진스의 사례처럼 사회 현상에도 정반합의 원리가 작동한다. 최근 금융권의 상생금융은 다소 억지스러운 측면도 있지만 긍정을 담아 이를 하나의 결과물이 아니라 더 나아지기 위한 변화의 과정으로 바라본다면 작은 희망이 생기기도 한다.


'경쟁에서 상생으로' 변화를 강조한 금융지주 회장은 말에서 그치지 않고 기존 지주와 은행의 'ESG본부'를 'ESG상생본부'로 확대 개편했다. 다른 금융지주 회장은 '성장을 멈추자는 것도, 무작정 나누자는 것도 아니다'며 성장전략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하는 시점이라고 임직원에 강조했다. 상생금융의 진정한 의미를 살릴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시작한 것이다.


뉴진스 이전에 소녀시대가 있었다. 소녀시대가 되지 못하고 조용히 자취를 감춘 그룹도 뉴진스 앞에 있었다. 중요한 점은 그들이 있기에 뉴진스도 탄생했다는 것이다. 커다란 역사의 흐름을 지금의 우리는 보지 못한다. 그래서 생각해본다. 지금의 '상생금융'은 진정한 '상생금융'을 낳는 하나의 정(正)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정부의 상생금융 압박이 은행권의 진정한 패러다임 전환을 이끄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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