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기울어진 회사채 시장…제도개선 해 넘긴 당국
'캡티브 영업' 넘어 '자기계정 인수' 나선 증권사들…금융위는 '묵묵부답'
이 기사는 2023년 12월 26일 08시 40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여의도 증권가(사진=딜사이트)


[딜사이트 백승룡 기자] "적정 공모가 제시라는 주관업무 본연의 기능이 충실히 이행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조성하겠다"


올해 코스닥 시장에서 '뻥튀기 상장' 의혹이 불거진 '파두 사태'를 계기로 금융감독원이 기업공개(IPO) 제도를 개선하겠다면서 강조한 대목이다. 반도체 설계업체 파두는 지난 7월 IPO를 진행하면서 올해 연간 매출액 추정을 1202억원으로 제시했지만, 올 1~3분기 누적 매출액이 180억원에 그쳐 논란이 일었다. IPO 증권신고서에 중요사항을 허위기재, 누락했다는 의혹이 커지자 당국 차원에서 재발 방지에 나선 것이다.


수많은 개인투자자(개미)의 이목이 집중되는 IPO 등 주식시장에서 나타난 제도적인 결함은 감독 당국에게 치명적이다. 금감원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금융회사의 건전성 제고라면 다음 목표가 '투자자 보호'인데, 자칫하면 설립 취지에도 부합하지 못하는 기관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기 십상이다. 성난 개미들의 들끓는 여론은 각종 선거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더욱 조심스럽다. 그래서인지 당국의 '외양간 고치기'는 신속하게 이뤄졌다.


다만 기관투자가가 중심이 되는 채권시장에서 당국의 대응은 온도 차가 역력하다. 올해 7월 롯데쇼핑의 공모채 발행 과정에서 대표주관을 맡은 증권사들이 만기가 다르면 별개 채권으로 간주된다는 사각지대를 활용했다. 주관을 맡지 않은 만기의 수요예측에 대거 참여하면서 발행금리를 낮춰준 정황이 드러났다. 증권사들의 대표주관 딜(Deal) 수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계열 금융회사를 수요예측에 동원하는 '캡티브 영업'에서 한층 심화됐다. 결국 증권사들이 자기계정(PI)으로 직접 수요예측에 참여하기에 이른 것이다.


논란이 커지자 금감원은 지난 3분기 올해 회사채 수요예측에 대한 전수조사에 돌입했지만, 올해가 지나도록 이렇다 할 '교통 정리'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주관사들의 비정상적인 수요예측 참여는 발행금리를 왜곡하고, 여타 기관투자가들의 물량배제 등으로 직결될 수 있는 사안임에도 당국의 대응이 유난히 늦다. 모 증권사의 임원은 "금감원이 '투자자 보호'를 앞세우는데 여기엔 기관투자자가 배제된 것 같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전문 플레이어들끼리는 좀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의 대응"이라고 말한다.


사실 금감원이 섣불리 나서기 어려운 이유도 있다. 주무 부처인 금융위원회조차 명확한 유권해석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 일부 증권사는 금융위원회에 법령해석 질의서를 송부, 증권사가 발행사의 특정 만기에만 대표주관 업무를 수행할 경우 다른 만기에 수요예측 참여가 가능한지 유권해석을 공식 요청했다. 그러나 금융위는 반년이 지나도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금융위부터 명확히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다보니, 금감원이나 금융투자협회도 제도적 뒷받침에 나설 동력이 떨어졌다.


결국 연내 수요예측 제도를 손질하지 못하고 해를 넘기게 됐다. 문제가 더 곪을 때까지 미뤄두려는 걸까. 그 사이 증권사들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제도 사각지대에서 '눈치게임' 중이다. 회사채 시장의 가격결정 투명성을 확립하기 위해 지난 2012년 수요예측 제도를 도입한지 만 11년.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을 위해 '글로벌 스탠다드'를 강조하고 있지만, 여전히 외국인 자금이 흐르지 않는 '우물 안' 회사채 시장의 민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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