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박수칠 때 떠나라
증권가 장수 CEO, 리스크 관리 문제로 불명예 퇴진 '씁쓸'
이 기사는 2023년 12월 06일 08시 36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딜사이트 이진철 부국장] 연말을 맞아 기업들의 인사 발표가 한창이다. 올 한해 '논공행상'을 통해 승진자와 누락자의 희비가 엇갈린다. 샐러리맨 승진의 최고봉은 뭐니뭐니해도 최고경영자(CEO)에 오르는 것이다. 오너가 일원이 아닌 이상 사원으로 입사해 CEO에 오르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능력과 성과를 인정받아 CEO에 오르면 '샐러리맨 신화'라는 표현을 써가며 세간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는다. CEO에 오른 후 탁월한 경영실적을 인정받고 연임을 반복하며 이른바 '직업이 CEO'라는 별칭을 얻기도 한다.


어렵게 오른 CEO 자리인 만큼 지키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다. 하지만 증권가의 올 연말 CEO 인사는 경영실적이 아닌 유독 징계 리스크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증권가에서 박정림 KB증권 사장과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이 금융당국의 징계로 거취가 결정될 분위기다. 두 수장은 라임·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불완전판매 사태와 관련해 수년째 끌어온 징계가 확정되면서 연임이 불확실해졌다. 


지난 2019년부터 4연임한 박 사장은 올해 KB금융지주 차기 회장 선임 과정에서 여성 최초로 숏리스트에 포함될 만큼 회사 안팎에서 경영능력을 인정받았지만 결국 금융당국의 '직무정지' 결정을 받고 지주부문장을 자진사임했다. 정 사장도 지난 2018년 선임된 이후 6년째 NH투자증권을 이끌어 왔지만 내년 3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수장 자리를 지키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 82학번 동기인 박 사장과 정 사장은 경영성과를 인정받는 증권가 대표 장수 CEO였지만 말로는 불명예스럽게 회사를 떠나야 할 처지다.


황현순 키움증권 사장도 2000년 창립 멤버로 키움증권에 합류한 지 23년 만에 회사를 떠나게 됐다. 지난 4월 차액결제거래(CFD) 서비스를 이용한 '라덕연 사태'에 이어 영풍제지 사태 등을 통해 리스크 관리 부실의 책임을 지고 자진 사임해서다. 황 사장은 올해 3월 3년 임기로 재선임되며 회사 내 입지를 확인했으나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지 9개월 만에 물러나게 됐다.


증권사 CEO가 내부가 아닌 타의에 의해 물러나야 하는 사례는 앞으로 더 많아질 수 있다. 금융당국이 나서서 불법 영업 관행에 대해 '증권사 CEO 처벌'까지 가능하다고 언급했던 만큼 경영실적을 인정받는 장수 CEO라도 리스크 관리에 문제가 생기면 자리를 지키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영실적은 기본이고 리스크 관리에 대한 CEO 책임도 중요해진 것이다.   


부, 명예, 성공 등을 얻은 사람도 전성기가 끝나고 쇠락기가 찾아와 곧 그만둘 때를 맞게 된다. '박수칠 때 떠나라'라는 말도 그래서 생겨났다. 하지만 능력과 열정이 있는데 일을 그만두고 스스로 물러나는 것은 쉽지 않다. 증권가 장수 CEO나 신임 CEO 모두 '박수칠 때'가 아니라 '박수받으며' 떠날 수 있는 광경이 그려지길 기대해본다.  "꿈이 CEO인 사람은 사고방식과 실행하는 속도가 다르다"며 신입사원들에게 꿈을 크게 가지라고 조언한다. 그 꿈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박수 받으며' 떠나는 CEO가 많이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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