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당연한 승계, 이젠 멈춰야
2·3세 경영은 개인의 능력…소유·경영 분리해야
이 기사는 2023년 11월 08일 08시 35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company (출처=freepik)


[딜사이트 이수빈 기자] 한 어미 사자가 하반신이 마비가 된 아기 사자를 버려둔 채 눈물을 머금고 뒤를 돌아가는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 있다. 그 어미는 새끼가 따라오길 바라며 몇 발짝 앞서가다 멈추기를 반복하지만 결국 따라오지 못하는 새끼를 눈물 삼키며 버리고 떠난다. 약육강식 세계의 생존을 위해 어미는 따라오지 못하는 새끼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인간 사회는 다르다.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부모들은 뒤쳐진 자식을 끌고 가려 노력한다. 가정에서의 이런 모습은 가족애(愛)일 것이다. 하지만 회사 경영의 영역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경영 성과를 내지 못하는 자녀에 대한 창업주의 무리한 승계와 지원은 수많은 회사 이해관계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한다.


물론 스스로 승계의 자격을 증명해낸 사례도 있다. 2017년 휠라 열풍을 이끈 윤근창 대표다. 그는 2016년 휠라코리아 풋웨어 본부 총괄(본부장)에 오른 뒤 노후화된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대대적인 브랜드 리뉴얼을 단행했다. 그렇게 출시한 '디스럽터2'가 국내 어글리슈즈 열풍을 주도하면서 휠라는 화려한 재기에 성공했다.


하지만 윤 대표는 꽤 특별한 사례다. 오너 2·3세의 경영 능력이 심심찮게 시험대에 오르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창업주의 피가 섞였다거나 경영학을 전공했다고 해서 전문적인 경영능력이 검증되는 건 아니다. 이건 말 그대로 환경적인 요인과 개인의 기질이 더해진 능력의 영역이다. 삼성전자 같은 10대 그룹 뿐만 아니라 외부 투자자가 있는 국내 상장사들의 '당연한 승계'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외국에선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게 흔한 일이다. 다양한 기업과 시장에 몸담은 전문 경영인이 회사를 이끄는 게 더 건강한 기업 운영을 가능케 하는 까닭이다. 우수한 승계 사례로 자주 등장하는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은 능력이 입증된 자녀에게만 경영 수업에 참여할 기회를 준다. 또 계열사는 전문가에게 경영권을 일임해 독립경영을 보장하고 있다.


2·3세로 경영권이 넘어온 다수의 국내 기업은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하지 못해 창업주가 일군 성과까지 갉아먹기도 한다. 경영 능력이 기업의 존립에 치명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를 오너 2·3세의 승계와 연관 짓는 목소리는 크지 않다. 시장은 점점 더 빠르고 치열하게 변하고 있다. 그러니 이제라도 대를 거듭해온 당연한 승계에서 벗어나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경영을 위해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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