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흑자 달성못한 SK온의 채권 발행
현금흐름 불안정한 구조로 회사채 데뷔…신평사·증권사, 시장 눈높이 못 맞춰
이 기사는 2023년 10월 27일 08시 39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SK온의 E556 SF 배터리.(사진=SK이노베이션)


[딜사이트 백승룡 기자] 우리나라 회사채 시장은 독특한 구조다. 신용등급 BBB급인 한진그룹·두산그룹 정도가 공모 회사채 발행시장에서 소화되는 마지노선으로 여겨질 정도로, 사업적으로나 재무적으로나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선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시장이다. 미국에선 하이일드 시장이 활성화돼 있다. 비우량기업들도 회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예외는 있다. 사업적·재무적 안정성을 갖추지 못했지만 든든한 그룹을 뒷배로 둔 경우다. SK온이 그렇다.


SK온은 출범 이래 첫 회사채 발행을 앞두고 최근 수요예측을 마친 상태다. 올해 LG에너지솔루션, 에코프로 등 이차전지 기업들이 실적 고공행진 속에서 회사채 데뷔전을 흥행으로 마치자 SK온도 회사채 초도 발행에 나선 것이었다. 다만 앞선 기업과 달리, SK온의 회사채 발행은 욕심이 앞섰던 것 아니냐는 게 투자은행(IB) 업계 안팎의 시각이었다. 채권시장에서는 현금흐름의 안정성이 중요한데, SK온은 아직 흑자 전환조차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당초 2022년이 흑자 전환 원년이 될 것으로 기대했던 SK온은 지난해 1조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다. 흑자 전환에 실패해 단기간 내 기업공개(IPO)에 나서기 어려워진 SK온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분주하게 프리IPO(상장 전 투자유치)에 나서 4조8000억원을 조달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SK온은 올해 상반기에도 6441억원의 영업손실이 발생해 흑자 전환 시점은 당초 목표 대비 계속 늦춰지는 모습이다. 실적이 궤도에 오르지 못해 IPO도 추진하지 못하는 기업이 채권을 발행하는 것은 무척 이례적이다.


그런 탓일까. SK온의 회사채 발행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우선 신용등급이다. 한국신용평가·한국기업평가·한국신용평가는 SK온의 첫 회사채 등급으로 일제히 A+(안정적)를 제시했다. 통상 신용평가업계에서 자체 현금창출력으로 자금소요를 충당할 수 있는 상환능력을 신용등급 A급으로 보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의문의 여지가 있는 등급 평정이다. 특히 한신평·나신평은 SK온의 자체신용도를 A-로, 한기평은 A0로 평가했다. 여기서 SK그룹의 지원가능성을 고려해 한신평·나신평은 2노치(notch)를, 한기평은 1노치를 각각 높였다. 자체신용도에 대한 평가도, 지원가능성에 대한 평가도 각기 달랐는데 공교롭게 SK온 등급이 A+로 수렴한 것이다.


주관사들의 금리밴드 설정도 부자연스럽다. 당초 3000억원 규모로 발행하려던 SK온은 투자자가 좀처럼 모이지 않자 모집액을 2000억원으로 줄였다. 그런 와중에도 주관사들은 SK온의 공모 희망금리밴드를 등급민평금리 대비 ±30bp(1bp=0.01%포인트)로 유지했다. 투심이 약할 땐 금리밴드 상단을 높여 시장 친화적인 조건을 내세우는 것이 통상적인 회사채 발행 전략이다. 한국투자증권·SK증권 등 주관사들은 금액을 줄이더라도 금리 상단을 고정해버렸다. SK온이 2년물에서 모집액을 채우지 못한 데 이어 3년물도 밴드 최상단에서 모집액을 채웠다는 것은 금리밴드가 시장의 눈높이와 맞지 않았음을 뜻한다.


결국 신평사·증권사의 'SK온 밀어주기'를 바로잡는 것은 시장이었다. 수요예측 이후 SK온의 발행금리는 2년물·3년물 모두 A+ 등급의 민평평균금리 대비 +30bp를 가산한 금리로 정해졌다. 26일 기준 무보증회사채 A+ 등급의 민평금리는 2년물 5.267%, 3년물 5.557%였다. 1노치 낮은 A0 등급의 민평금리는 2년물 5.451%, 5.822%로 18~26bp 높은 수준. 즉 SK온의 발행금리는 사실상 A0등급보다 열위한 조건으로 정해진 셈이다. 신평사의 등급과 주관 증권사의 금리밴드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자 시장이 '알아서' 적정 가격으로 끌어내렸다. 


SK온의 발행 과정을 지켜보면서 LG에너지솔루션의 '정공법'이 새삼 오버랩됐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2021년 첫 연간 흑자를 기록하면서 이듬해 기업공개(IPO)를 성공적으로 마쳤고, 올 상반기 회사채 발행까지 나서면서 일종의 '자본시장 교과서' 같은 스텝을 밟았다. 그래서 투자자들은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IPO 당시에는 국내 증시 역사상 최대 규모 상장에 성공했고, 올해 회사채 수요예측에서는 4조7200억원에 달하는 역대 최대 투자수요가 몰렸다. 시장은 준비된 기업이 찾아올 때 환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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