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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엘리엇의 '치킨게임'
승자 없는 '양패구상'···로펌만 '어부지리'
이 기사는 2023년 08월 10일 10시 22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딜사이트 정호창 부국장] 삼성물산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분쟁이 막바지 국면에 접어들었다.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에서 승소해 일단 판정승을 거둔 모습이나, 법무부가 불복에 나서 최종 결말은 아직 미지수다.


엘리엇은 ISDS 판정에 대해 '아시아에서 투자 대상국의 최고위층으로부터 기인한 부패한 범죄행위에 대해 국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최초의 투자자-국가 분쟁 사례'라며 '성공적 결과'라고 자화자찬했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다른 듯 하다. 자신감 넘치는 자평과 달리 실제 결과는 꽤 초라한 편이다.


엘리엇은 삼성물산과 관련해 총 7734억원을 지출했다. 주식 매입에 6856억원, 법률비용 등에 878억원을 썼다. 반면 회수액은 주식 처분 대금 6477억원에 그쳐 지금까지 1257억원의 손실을 보고 있다.


ISDS 판정대로 손해배상금과 이자, 법률비용을 합쳐 1245억원을 수령해야 손해가 13억원 정도로 줄어든다. 8년의 분쟁 기간과 5년의 중재를 거친 결말치고는 허망할 정도로 '실패한 투자'다.


삼성의 피해는 더 크다. 엘리엇과의 분쟁이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태와 얽히면서 창사 이래 최초로 그룹 총수가 구속되는 초유의 상황을 맞았다. 관련 형사 재판이 아직 끝나지 않아 삼성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서로 싸우다가 양쪽 모두 상처를 입은 '양패구상(兩敗俱傷)' 결말이다. 엘리엇은 ISDS 승소, 삼성은 합병 성사라는 소득을 얻었지만 둘 모두 얻은 것 보단 손해가 커 보인다.


양측의 싸움으로 덕을 본 곳은 법조계 뿐이다. 특히 엘리엇의 법률대리를 맡은 로펌들이 막대한 수입을 거뒀다. 엘리엇은 코브레앤김을 비롯한 세 곳의 로펌에 ISDS가 인정한 배상금(622억원) 보다 높은 768억원을 지불했다.


'소송 천국'이라는 미국에 뿌리를 둔 헤지펀드답게 천문학적 법률비용을 불사한 전략이 결과적으로 손해를 키웠다.


정부가 영국 법원에 제기한 ISDS 판정 취소 소송에서 승리한다면 엘리엇의 손실액은 1300억원 이상으로 불어난다. 역으로 엘리엇이 최종 승소하더라도 '본전'도 못 건지는 결말에 큰 변화는 없을 전망이다.


반면 소송전이 연장된 만큼 법률비용 부담은 더 늘게 됐다. '소송의 승자는 언제나 변호사뿐'이란 미국식 조크의 현실화다.


승자도 없는 싸움에 휘말린 피해자는 적지 않다. 주주, 임직원, 정부 관료 등 여러 관계자가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다. 웃기 힘든 자본시장판 블랙코미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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