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반도체 부진 부추긴 삼성·SK의 '엇박'
K반도체, 하반기 반등 선제 조건은 '실질적 감산'
이 기사는 2023년 07월 05일 08시 24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딜사이트 한보라 기자] "웨이퍼 투입량을 더 줄이겠다"


미국 메모리 반도체 제조사 마이크론은 올해 3분기(3~5월) 실적발표 자리에서 감산 강도를 높이겠다고 강조했다. 마이크론은 지난 3분기 시장 컨센서스(36억5000만달러, 약 4조8000억원)를 뛰어넘는 매출(37억5000만달러, 약 4조9100억원)을 달성했다. 매출 규모는 전년대비 줄었지만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마이크론이 실적을 발표하자 국내 반도체 업계 주가는 천정부지로 올랐다. 글로벌 D램 시장 3인 마이크론이 이 정도 실적을 냈으면 1위인 삼성전자나 2위인 SK하이닉스의 호실적은 예견돼있다는 기대감이 주가에 녹아든 결과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삼성전자 DS부문과 SK하이닉스의 지난 2분기(3~6월) 증권사 컨센서스는 적자를 유지하고 있다.


반도체는 대표적인 커머디티(commodity) 산업이다. 메모리 제조사 입장에서는 1개당 10원짜리 D램을 50개 파는 것보다 1개당 100원짜리 D램을 10개 파는 게 이득이다. 즉, 업황 반등의 선제 조건으로 판가 상승을 꼽는다. 이처럼 판가가 오르려면 시장 유통량이 줄면서 고객사 전반적으로 품귀 현상에 대한 우려가 커져야 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마이크론의 '감산 강도' 언급을 두고 메모리 제조사 간 감산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자는 SOS였을 것으로 풀이했다. 물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표면적으로는 감산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의 경우에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약 25년 만에 감산 의사를 표명한 만큼 주목도가 높았다.


그런데도 메모리 수요층의 반응이 미적지근했던 건 데이터센터나 세트업체 내부적으로 판가 바닥은 아직 멀었다는 계산이 작용한 결과라는 것. 국내 굴지 대기업을 떠받들고 있는 두 회사가 엇박자를 낸 데는 여러 이유가 있었으나 그룹 간 자존심 싸움도 한 몫했던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업계 한 관계자는 "애당초 삼성전자는 지난 4월 실적발표에서 데이터를 언급해가며 구체적으로 감산 계획을 밝히려 했다"며 "그런데 SK하이닉스가 올해 초 들어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일부 제품에서는 경쟁력 우위를 점하고 있다며 자신만만한 뉘앙스를 풍기자 발표 계획을 뒤엎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전 세계적인 불황 속 긴축이 겹치자 다운사이클의 생채기는 유례없이 깊어졌다. 업황 부진으로 현금창출력이 떨어지면서 SK하이닉스의 순차입금비율은 어느새 40%를 넘어섰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SK하이닉스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현금 부자로 꼽히는 삼성전자에서도 국내에서 운용할 수 있는 유휴현금이 바닥을 보일까 걱정하고 있다는 후문이 나온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벼랑 끝에나마 제조사 내부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의 '실질적 감산'이 거론되고 있다는 점이다. 자존심만 내세워 반목하기엔 각 회사 상황이 쉽지 않을뿐더러 지정학적 리스크나 거시경제(매크로) 변수도 산적한 상황이다. 오는 하반기부터 반도체 업황이 살아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메모리 제조사의 행동이 뒷받침돼야 한다. 


골이 깊은 불황일수록 입이 닳도록 언급되는 격언이 있다.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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