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감산할 결심
감산을 견뎌야 할 삼성전자의 무게감
이 기사는 2023년 05월 03일 08시 52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4일 중국 텐진에 위치한 삼성전기 사업장을 방문해 MLCC 생산 공장을 점검하고 있다. (출처=삼성전자)


[딜사이트 김민기 차장]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해준(박해일)은 딜레마에 빠진다. 경찰로서의 품위와 자부심을 선택하면 서래(탕웨이)와의 사랑과 생명을 버려야하고, 반대로 서래와의 사랑과 생명을 선택하면 경찰로서의 품위와 자부심을 버려야한다. 해준은 형사와 피의자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속에서 '헤어질' 혹은 '헤어질 수 없는' 고뇌를 한다.


최근 삼성전자가 메모리반도체 감산을 결심했다. 그동안 "인위적인 감산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온 삼성전자지만 올해 1분기 갑작스런 감산 발표에 반도체 업계는 모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감산을 놓고 고뇌했을 것이다. 감산을 선택하면 메모리 반도체 업계의 압도적인 1위로서의 품위와 자존심을 버려야할 것이고, 반대로 무감산을 선택하면 쌓여가는 메모리 반도체 재고를 감당하지 못해 수조원의 손실이 부메랑처럼 돌아오게 된다.


고심 끝에 이 회장은 감산을 선택했다. 아니나 다를까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삼성전자의 메모리 감산을 두고 안주하는 신호라며 이병철 창업 회장의 정신을 되살리라고 경고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메모리 삼두체제의 정상 자리가 너무 편해서 경쟁사들의 점유율을 더 뺏어오려는 욕구가 없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도 삼성전자가 무감산을 1~2분기 더 유지했다면 경쟁사인 SK하이닉스나 마이크론은 회생할 수 없는 타격을 입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애초에 지난해 4분기 반도체 불황이 왔을 때 무리한 증산으로 치킨게임을 펼치지 않았다면 4조원이 넘는 적자도 기록하지 않고 삼성도, 반도체 업계도 힘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럼에도 이 회장은 감산을 결정했다. 이 회장의 감산 결정은 단순히 수조원에 달하는 반도체 부문의 손실 때문 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 글로벌 1위의 품위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무감산 기조를 유지하며 경쟁사를 더욱 압박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만큼의 현금력도 충분했다. 


특히 삼성전자는 이건희 선대회장 시절부터 이어져온 불황 속 투자 기조를 한 번도 꺾어본 적이 없다. 선대 회장은 반도체 투자와 관련해 "실적에 맞춘 투자가 아닌 적절한 시기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꾸준히 견지하고 실천해 왔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감산을 결정한 배경에는 더 이상 반도체가 일개 기업의 수익을 올리는 산업재가 아닌 국가의 안보이자 핵심 자산이 됐기 때문이다. 미-중 반도체 패권 전쟁 속에서 단순히 어떤 기업이 살아남느냐 죽느냐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국가가 생존하느냐 뒤쳐지느냐 바뀌었다.


특히 전세계 메모리 반도체 1~2위가 모두 우리나라 기업이고 3위 업체도 미국 기업이다. 자국 주도로 공급망 재편을 시도하는 미국과 이에 반발하는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하는 입장에서 더 이상 과도한 출혈을 이어가는 것은 부담이다. 이 회장의 결심은 단순히 삼성전자만의 기업 이익을 넘어 대한민국의 미래와 경제를 결정하는 무게감과 압박감이 더해진 것이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해준은 자신의 품위와 자존심을 붕괴시키면서까지 서래에 대한 사랑을 지키고자 했다. 이 회장의 감산할 결심 역시 자존심을 버리면서까지 삼성전자 임직원들을 넘어 국가와 국민들을 위해 내린 과감한 결정이다. 평소 미래세대와 상생을 내걸며 사회적 역할을 강조해온 이재용 회장의 '동행' 비전이 이번 결심에 반영됐을 것이다. 


이재용의 '뉴삼성'은 이제 시작이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 뿐 아니라 글로벌 시스템반도체 1등을 목표로 내건 삼성전자의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도 진행 중이다. 냉혹한 반도체 패권 전쟁 속에서 기업 이익을 넘어 국가, 사회와 동행해 나가는 이 회장의 '결심'들이 향후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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