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경쟁 없는 통신업계···신규 요금제도 베끼기
경쟁 불씨 살릴 더 강한 자극제 필요
이 기사는 2023년 04월 20일 11시 10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 3월 2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SKT의 5G 신규 요금제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제공=과학기술정보통신부)


[딜사이트 최지웅 기자] 과점 시장인 이동통신 업계에 경쟁 불씨를 지피는 건 어려운 일이 됐다. 이동통신 가입자가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통신사들이 출혈경쟁보다 점유율을 지키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어서다. 경쟁사 가입자를 빼앗기 위한 통신사 간 치열한 싸움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지난 2월 윤석열 대통령이 이동통신 시장의 과점 문제를 질타하면서 분위기가 일순 바꼈다. 윤 대통령은 제13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통신분야는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고, 과점 형태를 유지하는 정부의 특허사업"이라며 "많이 어려운 서민 가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정부 차원의 제도 개선 노력과 함께 업계에서도 물가안정을 위한 고통 분담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윤 대통령의 질타 이후 통신사들은 부랴부랴 점수따기에 돌입했다. 수익성 악화를 핑계로 차일피일 미뤄왔던 새로운 5G 중간요금제를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가 차례로 선보이며 정부 뜻에 적극 부응했다. 두 회사가 공개한 5G 중간요금제는 월 평균 30GB~100GB 데이터 구간별로 요금을 세분화한 것이 특징이다. 그동안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고가 요금제에 가입했던 5G 이용자들에게 희소식이나 다름없다. 


다만 복잡한 요금제 설계로 소비자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 일부 이용자들은 2배 가량 확대된 요금제 구성 때문에 자신에게 적합한 요금제를 찾는 게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또 다양한 요금제 출시로 선택의 폭이 확대됐지만 실질적인 요금 인하 효과는 없어 보인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통신사들이 정부 압박에 떠밀려 보여주기식 요금제를 내놨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동통신 업계에 만연한 요금제 베끼기 행각도 여전했다. 통신사들은 5G 시대에 접어들면서 요금제 차별화 전략에 상당히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마치 통신사들이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비슷한 요금제와 상품을 쏟아내고 있다. 아직 5G 중간요금제를 발표하지 않은 KT도 조만간 경쟁사와 비슷한 수준의 요금제를 내놓을 것으로 예측된다.


문제는 이 같은 차별화 없는 경쟁이 이동통신 시장에 고착화된 과점 폐해를 더욱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경쟁이 없는 시장은 서비스 품질 저하로 도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3대 통신사가 공급을 주도하는 국내 이통통신은 대표적인 과점 시장으로 꼽힌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약 95%를 넘어서면서 가만히 있어도 돈이 굴러들어오는 사업으로 변모했다. 예전처럼 힘들게 출혈 경쟁을 벌일 이유가 사라진 셈이다. 통신사들이 적극적인 경쟁을 펼치지 않으면서 소비자들도 굳이 번호이동을 할 이유를 찾지 못한지 오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해 이동전화 번호이동 건수는 452만 건으로 2021년(508만 건) 대비 10.8% 줄었다. LTE 도입 직후인 2012년(1255만 건)과 비교하면 63.9%나 감소한 수치다. 통신사들이 2014년 10월 단통법 시행 이후 가입자 유치를 위한 과도한 보조금 경쟁을 피하면서 번호이동 건수가 급감했다. 


현재 정부는 이동통신 시장의 과점 폐해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 지난 2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동통신 시장 경쟁촉진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TF를 구성했다. TF 총괄 반장을 맡은 박윤규 2차관은 "경쟁이 없는 통신시장은 쉽게 집중화되고 서비스 품질은 저하될 뿐만 아니라 소비자 후생도 감소할 수 밖에 없다"며 "이 같은 통신시장 환경을 고치지 않으면 통신산업은 도태되고 그 피해는 우리 국민이 그대로 떠안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소수의 공급자가 지배하는 독과점 시장을 바라보는 소비자의 시선도 곱지 않다. 공정한 경쟁이 배제되면서 가성비 나쁜 상품과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어서다. 이번에 통신사들이 내놓은 5G 중간요금제가 이를 증명한다. 통신 3사 중심의 과점 폐해를 막기 위해 신규 요금제보다 더 강한 자극제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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