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사면초가 놓인 K-반도체, 위기 극복에 힘 모아야
조화석습(朝花夕拾)의 자세로 후회 없는 결정 필요
이 기사는 2023년 03월 06일 11시 08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전자 천안캠퍼스를 찾아 패키지 라인을 둘러보고 사업전략을 점검했다. (출처=삼성전자)


[딜사이트 김민기 차장] K-반도체가 사면초가의 위기에 빠졌다. 네 방향에서 적군이 부르는 노래가 들린다. 안으로는 여야의 정치적 갈등으로 K-칩스법이 통과되지 못하고 있고, 밖으로는 중국과 미국 두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지고 있다.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하는, 외롭고 곤란한 상황이다.


K-반도체를 둘러싼 위기는 당장 반도체 재고 문제부터 미-중 패권 다툼까지 한 두가지가 아니다.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로 IT 수요가 급감하면서 반도체 재고율은 26년 만에 사상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지난 1월 반도체 재고율은 265.7%로 1997년 3월(288.7%) 이후 25년 10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올해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사상 최악의 적자는 가시화되고 있다.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도 위기 중 하나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아직 세계 1위를 기록 중이지만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는 파운드리 세계 1위 업체인 대만 TSMC와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2030년 시스템 반도체 분야 글로벌 1위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그러나 TSMC와의 점유율 격차는 더 벌어졌다. .


특히 메모리 반도체 분야와 시스템 반도체 분야가 서로 요구되는 혁신 역량이 다르다는 점이 가장 큰 어려움이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는 표준화한 대량 생산 체제를 기반으로 해 중앙 집중적인 개발 방식이 요구된다. 반면 시스템 반도체 분야는 반도체 밑그림을 설계하고 이를 고객 요구에 맞춰 양산 가능하도록 해야하며 고도의 설계 역량이 요구된다.


애초에 시작점부터 다르다보니 삼성전자가 이 2개 분야를 모두 해내기가 쉽지 않다. TSMC의 경우 수많은 디자인하우스가 있어 고객사마다 완벽한 맞춤 설계가 가능한 시스템이 구축돼 있으나 삼성이 이러한 시스템을 하루아침에 따라잡기는 불가능하다.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힘든데 격차를 줄이기 위한 투자도 만만치 않다. 삼성전자 역시 메모리 반도체에서 시스템 반도체로의 전환기에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다가 힘만 분산시켰다. 그동안은 수학만 잘하면 됐는데 이제는 수학도 해야 되고 영어도 해야 해 돈도 시간도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실제 삼성전자는 2018년 파운드리에 34억달러를 투자한 반면 TSMC는 3배인 104억달러를 쏟아 부었다. 올해도 삼성전자는 3년간 매년 파운드리에 19조원을 투입할 예정이고 같은 기간 TSMC는 연간 49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결국 삼성전자는 자회사로부터 20조원을 차입해 파운드리 투자에 나서게 됐다.


기업 간의 경쟁에 힘을 써도 모자랄 판에 이제는 미국과 중국 눈치까지 봐야한다. 이번에 공개된 미국 상무부 인센티브 방안에는 중국 투자금지 내용이 포함됐다. 삼성전자가 시안 공장에서 전체 낸드플래시 출하량의 약 40%를, SK하이닉스가 우시공장에서 전체 D램 출하량의 약 50%를 생산하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는 사실상 중국 공장 철수까지도 염두에 둬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미국의 인센티브 방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원가 경쟁력이 떨어져 리스크가 너무 크다. 이미 부지 선정까지 마치고 미 현지에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삼성전자는 당장 보조금 신청을 하지 않으면 미국 정부의 눈 밖에 날 수도 있다.


초과수익을 회수하겠다 점도 부담이다. 반도체 사업의 특성상 막대한 초과이익은 향후 기술 발전과 경쟁사 간의 격차 유지를 위한 투자금으로 이용된다. 초과 수익이 없다면 투자 여력이 줄어들고 기술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이외에도 미국 정부는 민감한 기술정보와 재무자료까지 요구하고 있다. 결국 궁극적으로 미국은 자국의 메모리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에 대한 지원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수율·생산 효율을 담은 내용이 미국 기업에 넘어갈 수 있다. K-반도체가 가장 잘하는 메모리반도체 시장마저도 어려울 수 있다. 죽 쒀서 개주는 꼴이다.


이러한 사면초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K-반도체가 단순히 한 기업을 위한 일이 아닌 공동의 목표인 '국익'이라는 점을 정부 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각인해야 한다. 현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민, 정부, 기업이 발을 맞춰 달리지 않으면 단순히 반도체 세계 1위를 선두를 내주는 것이 아닌 대한민국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조화석습(朝花夕拾)이라는 말이 있다. 아침에 떨어진 꽃을 바로 쓸어내지 않고 해가 진 다음에 치운다는 뜻이다. K-반도체 문제를 지금 당장 해결 하긴 어렵지만 국민 모두가 힘을 모아 시간을 두고 한 걸음 물러서서 숙고한다면 후회 없는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

관련종목
관련기사
데스크칼럼 354건의 기사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