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한보라 기자] 올해 디스플레이 한파가 심상치 않다. 원론적으로 디스플레이 업체 고객사인 세트업체에 쌓인 재고가 오는 하반기에나 해소될 것으로 보이면서 현금 유입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최근 애플에서 디스플레이 자체 생산을 선언하면서 그나마 선방하고 있던 중소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시장마저도 쪼그라들 위기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3대 신용평가사(한국신용평가‧나이스신용평가‧한국기업평가)는 모두 올해 디스플레이 산업환경을 '비우호적'으로 평가했다. TV,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 수요가 쉽게 회복되기 어려울 것으로 점쳐지면서 전자부품을 공급하는 디스플레이 업계 부진도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진단이다.

디스플레이 업계 실적은 고객사인 세트업체와 궤를 함께한다. 현재 고금리, 높은 물가에 전자기기 수요 회복 시기는 불확실하다. 이에 대표적인 국내 세트업체로 꼽히는 삼성전자와 LG전자도 공장 가동률을 줄였다. 지난해 3분기 말 영상기기를 생산하는 삼성전자 DX(Device experience) 부문과 LG전자 HE사업본부의 평균가동률은 각각 전년 말 대비 6.00% 포인트, 15.5% 포인트 떨어졌다.

문제는 가동률보다 TV와 같은 전자기기 수요가 더 크게 줄어들면서 고객사가 쌓아둔 재고 부담도 상당하다는 점이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의 실적이 엇갈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해 상반기 TV용 액정표시장치(LCD) 국내 생산을 전면 중단했다. LCD 시장은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의 저가 물량 공세로 수익성이 상당히 저하됐다. 그만큼 시장 철수를 결정하고 신사업에 집중하기로 한 것.

삼성디스플레이가 새로운 먹거리로 꼽은 건 모바일 부품으로 쓰이는 중소형 OLED다. 주요 고객은 아이폰을 생산하는 애플이다. 세트업체의 충성 고객이 확보돼 있는 만큼 전자기기 한파에도 실적은 순항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이미 2021년 연간 당기순이익에 가까운 실적을 내기도 했다.

반면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말에야 TV용 LCD 국내 생산을 중단했다. 아직 실적의 상당 부분을 LCD가 차지하고 있는 만큼 생산 중단을 선언하기 쉽지 않았다.

미래 먹거리로 TV에 쓰이는 대형 OLED에 주력하고 있어 경기에 따른 실적 민감도도 컸다. LG그룹 차원에서 자율주행 전기차 부품을 생산하는 전장(VS, Vehicle component Solutions)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대형 디스플레이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 오디오, 내비게이션 등 인포테인먼트(IVI)를 원활하게 구현하려면 차량용 디스플레이의 대형화는 불가피하다.

업계 관계자는 "스마트폰 시장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삼성디스플레이의 실적이 견조했던 건 주요 고객사인 애플의 실적이 시장수요와 무관하게 움직였기 때문"이라며 "최근 중국 쪽에서 중소형 OLED 시장 선점에 나섰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LCD와 비교해서는 잠식 속도가 느릴 것으로 보이는 만큼 단기간에 문제가 발생하진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이처럼 고부가 제품인 중소형 OLED, 즉 스마트폰 부품 납품을 늘리거나 노트북, 모니터 등 정보기술(IT) 제품 쪽을 커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다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소형 OLED 시장도 쪼그라들 위기다. 최근 블룸버그는 내년부터 애플이 아이폰, 애플워치 등에 탑재되는 디스플레이를 자체 개발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아이폰14 기준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공급하는 OLED 패널 비중은 각각 70%, 23%다. 애플이 실제로 디스플레이를 자체 개발하기 시작한다면 이들 업체의 실적 타격은 불가피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