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한보라 기자] 한국기업평가가 낸드플래시 판가 회복 시기를 내년 하반기로 제시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부가 제품군 수요가 큰 D램은 상대적으로 상황이 낫다. D램 판가는 올해 4분기부터 반등할 전망이다. 메모리 반도체 제조사의 투자 감축 등 적극적 감산 노력이 반영된 결과다. 

한국기업평가는 22일 발간한 이슈리포트에서 "올해 낸드플래시 연간 출하량은 50% 이상 상승하겠지만, 평균판매단가(ASP)는 재고를 털어내기 위한 가격 경쟁으로 전년대비 55% 떨어질 것"이리며 "낸드플래시 판가 회복 시기는 내년 상반기, 재고자산 정상화 시기는 내년 하반기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한기평은 "낸드플래시는 과거보다 수요 성장세가 낮아진 상황에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실수요까지 급격히 줄자 대규모 공급 과잉이 초래됐다"며 "이런 배경 때문에 제조사 차원의 적극적 감산 노력에도 D램보다는 수요·공급 불균형이 더디게 회복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낸드플래시는 플로팅게이트에 전하를 가둬 정보를 저장하는 '비휘발성 메모리'다. 이런 특성상 응용처는 스마트폰 등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 중심으로 구성됐다. 반면 D램은 더블데이터레이트5(DDR5), HBM3 등 고부가 제품을 중심으로 인공지능(AI) 학습용 서버까지 응용처가 확대됐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진 IT 수요 약세에 낸드플래시 업황이 더 민감한 이유다. 

한기평은 "올해 낸드플래시 출하량은 예상보다 크게 위축됐다"며 "(B2C 응용처 외에도) 빅테크 기업이 제한된 예산 내에서 클라우드 서버보다는 AI 서버 투자 비중을 늘리기를 선택하면서 낸드플래시 수요 감소세는 더 두드러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낸드플래시 업황 부진 장기화에 제조사는 감산 규모를 계속 늘리고 있다. 미국 마이크론, 일본 키옥시아는 지난해 4분기부터 낸드플래시 감산에 착수했다. 국내 업체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도 재고 수준을 고려해 지난 2분기부터 낸드플래시 추가 감산에 나섰다. 

낸드플래시 시장 안에서는 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한 치킨게임이 발생할 확률은 적다는 게 한기평의 진단이다. AI용 서버라는 신시장에도 D램 시장 회복 시기가 더뎌진 이유는 지난해 하반기 진행된 치킨게임 때문이다. 당시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의 공식적 감산 발표를 기회로 삼고 공격적인 물량 공세를 통한 D램 시장 점유율 확보를 꾀하고자 했었다. 

다만, 글로벌 낸드플래시 시장이 4강 구도로 재편될 가능성은 남아있다. 현재 낸드플래시 시장 플레이어는 국내 2곳(삼성전자, SK하이닉스), 미국 2곳(마이크론, WDC), 일본 1곳(키옥시아) 등 5개 제조사로 구성돼 있다. 업계는 전략적 동맹 관계인 WDC와 키옥시아 간 합병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키옥시아와 WDC는 지난 1999년 합작법인(JV) 설립한 이래 생산 공장을 공유, 만들어진 낸드플래시를 투자 지분에 따라 나눠 가져왔다. 기술력, 생산성 모두에서 국내 제조사에 밀리는 만큼 두 업체가 합병을 실시해 시장 내 지각 변동을 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블룸버그 통신 보도에 따르면 신설법인 지분은 WDC와 키옥시아가 각각 50.5%, 49.5% 보유하게 될 전망이다.

한기평은 "장기적인 수요 성장세에 대응한 낸드플래시 기술 투자 경쟁은 지속될 것"이라며 "향후 경쟁사 합병 등 업계 경쟁구도에 변화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