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백승룡 기자] 호텔신라와 HDC를 모회사로 두고 있는 HDC신라면세점이 신종자본증권을 통해 '모래성 자본'을 쌓아가고 있다. HDC신라면세점은 지난 2020년 코로나 확산 이후 손실이 쌓이면서 자본잠식에 빠진 상황이다. 유상증자 등 자본성 조달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각각 50%씩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호텔신라와 HDC는 수년째 자금수혈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2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HDC신라면세점은 전일(20일) 사모시장에서 신한투자증권 주관으로 40억원 규모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다. 30년 만기로 금리는 연 7.2%다. 다만 1년 뒤 콜옵션 조항을 뒀다.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500bp 가산금리가 적용돼 금리는 연 12.2%로 뛴다. 이후에도 매년 콜옵션이 도래해 미행사 시 해마다 300bp씩 추가로 가산금리가 붙는다.

앞서 HDC신라면세점은 이달 15일에도 DB금융투자 주관으로 50억원 규모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한 바 있다. 금리와 콜옵션 조항은 모두 이번과 동일했다. 총 90억원 규모 신종자본증권 자금을 두 주관사로 나눠 모집한 셈이다.

현재 HDC신라면세점은 부분 자본잠식 상태다. 자본금 800억원인 HDC신라면세점의 별도기준 자본총계는 올해 상반기 말 기준 53억원 수준이다. 같은시기 부채총계는 2742억원에 달해 부채비율이 5171.7%에 이르고 있다. 지난 2020년 코로나 확산으로 적자에 빠진 HDC신라면세점은 ▲2021년 -380억원 ▲2022년 -292억원 등 영업손실을 지속했다. 올해 상반기에도 133억원 규모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손실이 누적되면서 결손금이 쌓인 HDC신라면세점은 지난 2021년 말 300억원 규모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한 바 있다. 콜옵션 시점은 1년 6개월 뒤인 올해 6월로 정해뒀다. 신종자본증권은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되지만, 지난해 11월 흥국생명 사태에서 보듯 신종자본증권에 대한 콜옵션 행사는 금융시장에서 일종의 불문율로 통한다.

HDC신라면세점도 콜옵션 시점에 맞춰 올해 6월 300억원 규모 신종자본증권을 조기 상환하는 대신, 재차 신규 발행에 나섰다. 콜옵션을 행사한 6월 한 달에만 네 차례에 나눠 총 600억원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다. 연이율은 7.2~8.0% 사이에서 각각 정해졌다. 이후 세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이달 두 차례에 나눠 90억원 규모 신종자본증권을 추가로 발행한 것이다.

IB업계 관계자는 "엔데믹 이후에도 적자 기조가 지속되면서 자체 현금흐름으로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사실상 모회사인 호텔신라와 HDC의 유상증자 등 자본성 조달이 필요한 구조인데, 주주회사들의 이렇다 할 결단이 나오지 않으면서 신종자본증권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IB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통상 신종자본증권은 콜옵션 시점에서 조기상환을 염두에 두고 투자를 하는데, HDC신라면세점은 자칫하면 조기상환이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에 상당히 높은 수준의 스텝업 조항이 책정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모회사인 호텔신라와 HDC의 유상증자 결정이 쉽사리 나오지 않는 것은 HDC신라면세점의 정상화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까닭으로 풀이된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면세산업, 특히 시내면세점은 중국 대리구매상에 대한 매출의존도가 높았는데 엔데믹 이후에도 중국의 경기 부진 등이 이어지면서 면세점의 실적 회복이 지연되고 있다"며 "HDC신라면세점이 '밑 빠진 독'이 돼 버려 모회사들이 자금수혈을 주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