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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봉준호·박소담이 나타나려면
김태호 기자
2023.08.09 06:30:19
중·저예산 상업영화 시장 쇠퇴...정부 지원 통한 벤처투자 활성화 필요
이 기사는 2023년 08월 08일 08시 37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봉준호 감독이 제작한 영화 '플란다스의 개'(2000) 포스터. 주연은 이성재(좌), 배두나(우). (출처=CJ ENM)

[딜사이트 김태호 기자] 백수나 다름없는 어느 시간강사가 개 짖는 소리에 시달리다가 우연히 복도에서 낯선 개를 만난다. 그는 홧김에 개를 납치해 지하실에 가둔다. 다소 당황스럽게 시작되는 듯한 이 영화의 제목은 '플란다스의 개'(2000)다. 봉준호 감독의 첫 장편 영화로 순제작비가 당시 평균(15억원)에도 못 미치는 10억원에 불과한 중·저예산 영화였다.


봉 감독을 배출한 국내 중·저예산 상업영화 시장이 현재 괴사하고 있다. 중·저예산 상업영화는 통상 순제작비(홍보·마케팅비를 제외한 비용) 10억~50억원을 투입해 스크린 100개 이상을 확보한 작품을 일컫는다. 그런데 이 범주에 속하는 국내 상업영화 숫자가 지난 2015년 전체 개봉작의 67.3%(37편)에서 2018년 30%(12편), 지난해 16.7%(6편)로 줄었다.


영화사들이 수익을 위해 텐트폴(흥행 가능성이 큰 대작) 제작에 집중한 탓이다.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에 따르면 한국영화의 평균 순제작비는 2015년 약 37억원에서 지난해 약 100억원까지 치솟았다. 관객을 사로잡기 위해 시각특수효과(VFX) 지출 비용을 늘렸고, 동시에 티켓파워가 있는 톱스타를 여러 주연으로 발탁(멀티캐스팅)하며 더 많은 출연료를 지급했다. 표준근로계약 정착으로 스탭들의 인건비가 증가한 원인도 있다.


게다가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중·저예산 영화에 대한 투자마저 위축됐다. 지난해 순제작비 30억~50억원 한국 상업영화의 평균 수익률은 마이너스(-) 31.7%에 그쳤다. 원래도 좋지 않던 성적(2016년 –10.6%, 2019년 –25.7%)이 아예 바닥을 찍은 것이다. "중·저예산 작품에 큰 수익을 기대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투자할 작품도 줄어들고 있다"며 한 중소형 벤처캐피탈 대표가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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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저예산 상업영화 시장이 위축되면 많은 부작용이 발생한다. 우선 멜로·코미디 영화가 부족한 불균형 상태가 유발될 수 있다. 또 신인 배우와 감독들의 등용문도 좁아진다. 박소담 배우와 같은 케이스가 나오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박 배우는 독립영화에 출연하다가 순제작비 47억원의 '검은 사제들'(2015)에 출연해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 등을 수상, 영화업계와 관객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그리고 '기생충'(2019)을 통해 칸의 레드카펫을 밟았다. 


영화업계 관계자들은 중·저예산 영화 생태계를 재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전문가들은 벤처캐피탈을 훌륭한 대안으로 꼽는다. 실제로 벤처캐피탈은 90년대 중반부터 중·저예산 영화 시장에 마중물을 부어오곤 했다. 당장 봉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도 무한기술투자 등 다수 벤처캐피탈 투자를 받아 제작됐다. 


벤처캐피탈은 2011년부터는 모태펀드를 통해 중·저예산 영화에 투자를 집행했다. 한국벤처투자가 모태펀드 영화계정을 신설하며 매년 관련 펀드를 조성했기 때문이다. 영진위가 연 수 백억원을 출자했고, 위탁운용사(GP)로 선정된 벤처캐피탈은 민간 자금을 더해 펀드 규모를 영진위 출자금의 배수 이상으로 늘렸다.


현재 3265억원 규모의 중·저예산 영화펀드가 운용 중이며 곧 총 412억원 규모 신규 펀드 두 개가 결성될 예정이다. 영화펀드는 상대적으로 회전율이 높아 실제 투자 금액이 펀드 규모보다 더 많다. 지난해 한국 상업영화의 총제작비(4483억원)을 고려하면 모태펀드의 기여가 상당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영진위도 한국 중·저예산 영화 시장에서의 벤처캐피탈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듯하다. 한국벤처투자는 펀드 주목적 투자조건을 설정할 때 영진위 기준을 빌려오는데, 지난해부터 중·저예산 상단을 기존 50억원에서 74억원으로 상향하고 최소 투자 금액을 약정총액(AUM)의 45%→40%로 낮춰줬다. 투자 범위를 넓혀줬다. 올해는 구간을 분할해 중저예산(10억~30억원)에 AUM의 15%, 중예산(30억~74억원)에 30%를 투자하는 것으로 변경해 정책적 목적을 강화했다.


충분할까? 여러 벤처캐피탈리스트에게 의견을 물었다. 다양한 의견이 나왔지만, 공통적으로는 기준 완화와 함께 궁극적으로는 모태펀드 출자 예산을 증액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른 중형 벤처캐피탈 대표는 "이익 때문에 생떼를 부리는 게 아니다. 영화계를 살리기 위한 제언이다. 벤처캐피탈이 지난 수 십년간 한국 중저예산 영화 시장에 크게 기여했다"고 말했다. 


영화펀드 주축 투자자(앵커LP)인 영진위에게 무작정 증액을 요구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예산이 전년 대비 22.7% 삭감된 850억원으로 책정됐다. 수입 상당액이 영화 티켓 가격의 3%를 떼는 영화발전기금(영발기금)에서 비롯되는데, 코로나19로 영화산업이 크게 위축되면서 지난해 기금수익이 2019년 대비 67.2% 감소한 179억원에 그친 탓이다.


결국 한국 중·저예산 영화를 살리기 위한 정부의 대승적인 용단이 필요하다. 물론 정부가 지난해 15년 만에 영화발전기금에 국고 800억원을 출연했지만, 이 자금이 영진위가 공공자금관리기금에서 차입한 800억원을 조기 상환하는 데 투입된 탓에 실질적인 효과는 없었다. 영발기금은 2024년에 고갈될 전망이다.


영화 투자를 오래 해온 다른 중형 벤처캐피탈 대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99년 정부가 문화산업진흥기본법을 제정하고 기금 설치를 명문화 해 영화 등 콘텐츠 시장에 엄청난 자금을 댔다"며 "벤처캐피탈이 이 지원을 받아 중·저예산 영화에 마중물을 대며 여러 영화 감독을 발굴했고, 봉준호·박찬욱 감독도 그렇게 등장했다."


감수성이 부족한 탓일까. 다짜고짜 개를 훔치는 '플란다스의 개'의 내러티브를 지금도 선뜻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확실한 것은 이같은 영화의 제작을 지원할 수 있는 환경이 있었기에 봉 감독도 한국인 최초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할 수 있었다. 한국 영화 시장이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지만, 정부가 마중물을 적극적으로 부어 '제2의 플란다스의 개'가 탄생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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