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창의 窓]
국민연금 기금운용은 엄정하다
수익률 제고가 연금고갈의 근본 해결책 아냐···안정성이 최우선
이 기사는 2024년 04월 24일 08시 29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이규창 편집국장] "주식시장 난리 났는데 받치지 않고 뭐하고 있느냐"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가 쩌렁쩌렁했다. 전화를 끊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모 고위 인사. 해당 인사는 으름장에 이어 '돈 많은' 국민연금이 밑을 받쳐서 폭락하는 증시가 반등하면 수익률도 올릴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아니냐는 그럴듯한 논리도 곁들였단다.


정확히 20년 전 얘기다. 국민연금 기금을 무슨 자신의 쌈짓돈 취급하는 정계와 관계 인사들이 많았다. 아직도 기금운용 책임자가 이런 전화를 받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최근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에서 나오는 소식을 들어보면 여전히 국민연금 기금운용은 말하기 쉬운 의제로 다뤄지는 듯하다.


연금개혁의 핵심은 기금고갈 문제에 대비하자는데 있다. 국민연금은 규모면에서 세계 3대 연기금으로 성장했으나 급속한 고령화로 적립기금 소진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지난해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가 발표한 제5차 재정추계에 따르면 오는 2041년 수지 적자, 2055년 적립기금 소진이 예상된다. 따라서 보험료율과 수급연령을 높여서 기금고갈을 최대한 늦추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논의 과정에서 기금운용수익률을 제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당연히 수익률을 올리면 기금고갈도 늦춰진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수익률이 캐나다연금의 절반에 불과하다거나, 주요국 가운데 꼴찌라는 등의 뉴스가 기억난다. 국정감사에서 일부 투자 실패를 지적하는 의원들의 질책도 매년 반복된다.


그러나 수익률 제고로 고갈까지 벌 수 있는 시간은 고작 몇 년이다. 기금고갈을 몇 년 늦추자고 수익률을 무리하게 끌어올릴 수는 없다. 높은 수익률은 당연히 높은 위험을 동반한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수익률 목표는 매년 물가상승률을 앞서는데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눈앞에 수익이 보이더라도 국공채와 같은 안전자산이 중심이다. 엉망이 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이 좋은 예다.


물론, 수익률 제고를 위한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다양한 대체투자처를 발굴할 필요가 있다. 역시 이 때도 안전장치는 기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해외 투자는 필수다. 우리나라 시장은 적립기금 1000조원이 넘는 국민연금이 운신하기 너무 협소하다. 최근 국민연금이 KT 지분을 '조금' 팔았다고 현대차그룹이 최대주주가 되는 일이 발생했다. 국민연금이 주요 주주로 있는 기업이 한두 곳이 아니다. 기업들은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국민연금 눈치를 본다. 시장 왜곡을 막기 위해서라도 지나치게 국민연금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상황을 억제해야 한다.


해외 투자에는 상당한 전문성과 위험 관리 능력이 요구된다. 역량 있는 전문가를 영입하기 위해 전문 운용역의 보수를 민간부문과 비슷하게라도 높일 필요가 있다. 외국인 전문가도 찾아나서야 한다.


기금운용의 독립성은 두 말하면 입 아프다. 국민연금 기금은 증시를 떠받치기 위한 돈이 아니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

관련기사
이규창의 窓 41건의 기사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