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삼표그룹, 대기업 품격 갖출 기회
그동안 '깜깜이 경영'···중대재해 발생 1호로 훼손된 기업가치 제고해야
이 기사는 2023년 06월 12일 08시 36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제공=삼표그룹)


[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삼표그룹이 지난 5월 1일부로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공시대상기업집단(이하 대기업집단)에 포함됐다. 대기업집단이 되면 기업집단 현황부터 비상장사 주요 사항, 대규모 내부거래 등 엄격한 공시 의무를 부여받게 된다.


대기업집단을 피하기 위해 정도원 회장이 펼쳐왔던 그동안의 노력은 물거품이 됐다. 정 회장이 그토록 대기업집단 지정을 거부하며 이른바 '깜깜이 경영'을 펼쳐온 속사정에는 3세 경영 승계라는 과제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정 회장 외아들인 정대현 사장이 온전히 경영권을 넘겨 받으려면 실탄 확보와 지배구조 재정비가 중요한데, 이 과정에서 승계 합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단 점을 우려했던 것.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적어도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집단 지정을 발표하는 내년 5월까진 어쩔 도리가 없다. 삼표그룹이 대기업집단에서 제외되려면 자산총액 조건을 미충족해야 하는데, 자본이나 부채를 2000억원 넘게 줄이는 과정은 쉽지 않다.


곱씹어보면 현 시점에서 삼표그룹이 대기업집단에 이름을 올린 것은 오히려 잘된 일인 듯 보인다. 충실하게 공시 의무를 이행하고 사익편취와 부당지원 등의 행위를 하지 않는다면, 사업장 사고로 훼손된 기업 이미지를 끌어올릴 수 있어서다. 삼표그룹은 국내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재법) 1호 사건 기업이란 오명을 가지고 있다. 검찰은 실질적 경영 책임자였던 정도원 회장을 기소했고, 엄벌 여론까지 더해지면서 실형 가능성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장에선 정대현 사장으로의 경영 승계 작업에 속도가 붙을 것이란 관측을 당연하게 보는 눈치다. 하지만 성급하게 추진한다고 능사가 아니다. 오히려 시장에 꼬투리를 잡힐 경우 역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삼표그룹이 가장 빠르고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내부거래를 줄이는 것이다. 내부거래는 재계에서 종종 활용하는 방법인데, 대기업집단이 되면 의무공시 사항이 많아지는 만큼 계열사 간 거래가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재계 순위 80위의 삼표그룹 계열사들은 지난달 31일자로 현황공시를 완료했다. 이에 업계에선 정도원 회장 일가가 지분 98.32%를 보유한 ㈜삼표의 내부거래율이 높을 것으로 내다봤고 예상은 적중했다.


㈜삼표는 작년 말 기준 전체 매출 1947억원 중 88%에 달하는 1708억원을 내부거래로 취득했다. 이 회사 수입원은 계열사로부터 받는 브랜드 사용권(로열티)과 경영 컨설팅 및 운송·전산 등 용역 제공이다. 하지만 실제 로열티는 67억원 수준에 그쳤고 나머지는 자체 사업에서 창출했다. 즉 사업지주회사인 ㈜삼표가 의지를 가진다면 제3자로부터 매출을 올릴 수 있고, 나아가 내부거래 비중까지 낮출 여지가 있단 의미다.


정대현 사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에스피네이처가 삼표그룹 계열사에서 거둬들인 매출 비중은 4%대에 불과했다. 한 때 50%가 넘던 이 회사 내부거래율은 정 사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부터 그 비중을 줄여왔다. 시장 안팎의 매서운 눈초리를 어느 정도 의식해 왔단 점을 방증한단 점에서 그나마 긍정적인 대목으로 풀이된다. 다만 에스피네이처가 최대주주로 있는 일부 자회사의 그룹사 의존도가 높다는 점은 여전히 문제다.


한편 정대현 사장이 최종적으로 삼표그룹 주인이 되기 위해선 지배구조 정리가 필수적이다. 현재 지주사 역할을 하는 회사가 2곳으로 불안전한 지배구조를 그리고 있어서다. 


시장에선 ㈜삼표와 에스피네이처가 최종 합병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거론 중이다. ㈜삼표 자회사인 삼표산업이 최근 모기업을 역흡수 합병하기로 결정한 것도 승계 일환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삼표시멘트를 제외한 모든 계열사가 비상장사이지만, 합리적인 합병 비율을 책정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정대현 사장이 합법적으로 유리한 비율을 가져가려면 에스피네이처의 기업가치를 높히는 것이 핵심이다. 과거엔 내부거래와 계열사간 무리한 합병으로 사세를 키웠다. 하지만 최소 1년간 유상증자와 담보 제공 등 경영 활동 상 중요한 내용을 모두 공시해야 하는 데다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 이익제공 금지 규제까지 받는 상황에서 이 방법을 활용하긴 쉽지 않다. 


공정위가 대기업집단을 지정하는 배경엔 소수의 재벌그룹으로 과도한 경제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고, 일감 몰아주기 등을 통한 불법적인 경영권 대물림을 사전에 차단하겠단 취지가 깔려있다. 삼표그룹 오너일가가 꼼수가 아닌, 대기업 품격에 걸맞는 정공법으로 경영권 승계 작업을 마무리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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