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삼성전자 남은 숙제 '마니악'
애플 이기는 게임 위해선 판매량 아닌 소비자 열광할 플러스알파 찾아야
이 기사는 2024년 02월 23일 11시 14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삼성전자 MX사업부장 노태문 사장. (제공=삼성전자)


[딜사이트 이호정 산업1부장] # '사실, 내 안에는 모든 나이가 다 있네. 난 3살이기도 하고, 5살이기도 하고, 37살이기도 하고, 50살이기도 해. 그 세월들을 다 거쳐 왔으니까, 그때가 어떤지 알지.'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미치 앨봄이 쓴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에 나오는 구절이다. 루게릭병에 걸린 대학 은사와 나눈 대화를 담은 해당 비소설은 몸의 나이에 구애받지 말고 호기심과 창의성 등 정신이 가진 힘을 추구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결이 다르긴 하지만 주변에서 한번쯤은 들어봤을 '나이가 들어도 마음은 청춘'이라는 말과 큰 틀에서는 일맥상통한다.


뜬금없이 이 얘기를 꺼내든 이유는 큰 아들 때문이다. 올해 중학교 2학년이 된 녀석은 작년부터 애플에서 출시한 아이폰15를 사달라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삼성전자의 갤럭시 Z플립3를 사준 지 1년밖에 안 됐는데 바꿔달라는 이유가 가관이다. 아이폰이 훨씬 멋지기도 하지만 갤럭시는 '아재폰'이라 싫다는 것이다. 차분하게 "갤럭시에는 녹음 기능도 있다"를 시작으로 아이폰을 굳이 살 필요가 없음을 설명했다. 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폰의 감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재라는 핀잔만 들었다. 나이로 따지면 수년전 아재가 됐지만, 그래도 젊은 감성을 갖고 살아왔다 자부했는데 씁쓸한 입맛을 다신 그날이 지금도 선하다.


# 삼성전자는 2006년까지만 해도 휴대폰 세계 제패의 꿈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원조인 모토로라는 추락세가 역력했고, 만년 1위 노키아는 저가품 위주라 프리미엄을 표방하고 나온 삼성전자 애니콜의 경쟁상대로 부족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하면서 삼성전자의 꿈은 하루아침에 물거품 됐다. 애플의 역습에 수많은 제조사가 스마트폰을 급조해 출시했지만 망신만 당했다. 삼성전자 역시 옴니아를 출시했지만 처절한 패배를 맛봤다. 더욱이 애플은 거북이가 아닌 달리던 토끼였기에 삼성전자 역시 피처폰 시대의 영광을 재현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팽배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달랐다. 2009년 갤럭시S를 출시해 추격 발판을 만들고, 이듬해 갤럭시 S2를 선보이며 애플과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을 양분하는 경쟁자로 우뚝 섰다. 퍼스트 무버인 애플이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대단하다면, 달리는 토끼를 2년도 되지 않아 따라잡은 삼성전자의 저력 역시 박수받을 만한 대단한 업적이다. 다만 삼성전자는 애플과 경쟁에서 단 한 번도 이기는 게임을 하지 못했다. 12년(2010~2022년) 간 글로벌 스마트폰 판매량 1위 자리를 지키며 지지 않는 모습만 보였을 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갤럭시에는 아이폰과 같은 마니악(maniac, 광적으로 열중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 신제품을 보다 빨리 사기 위해 밤샘 줄서기 하는 풍광 외에도 평균판매가격(ASP) 역시 온도차가 크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에 따르면 지난해 아이폰 시리즈의 ASP는 890달러(한화 약 118만원)로 288달러(38만원)를 기록한 갤럭시 시리즈보다 3배 이상 높았다. 그럼에도 대다수 소비자는 애플이 아닌 삼성전자가 스마트폰으로 폭리를 취하고 있다며 불만을 토해낸다. 갤럭시에는 소위 말하는 '아이폰빠'와 같은 마니악적 소비자가 없다 보니 범용제품을 좋은 가격에 공급하고도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고, 이기는 게임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지난해 애플에게 글로벌 스마트폰 판매 1위 자리를 내준 것도 결국엔 아이폰 마니악을 이겨내지 못한 결과다.


# "이번에는 아재폰 오명을 떨쳐낼 수 있을까." 최근 마트에 들렀다 새로 나온 갤럭시 S24 시리즈를 체험하면서 든 생각이다. 아직은 출시 초기다 보니 가타부타 전망하기 어렵다. 다만 이번에야 말로 오명을 벗을 절호의 기회이지 않을까 싶다. 일단 초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아 보인다. 세계 첫 인공지능(AI) 스마트폰임에도 기능적 측면에서 인정받고 있는 데다, 디자인 측면에서도 과거와 달리 호평을 받고 있어서다. 실제 갤럭시 S24 시리즈는 사전 예약물량도 역대 최대인 121만대를 기록했지만, 초기 소비자 만족도 조사에서도 애플의 아이폰 시리즈를 처음으로 뛰어넘었다.


다만 역대급 흥행조짐에도 삼성전자의 분위기는 외줄타기를 하듯 불안하다. 갤럭시 S24 시리즈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고 있는 것과 달리 단통법(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폐지 얘기가 나오면서 판매량이 예상보다 더디게 늘고 있어서다. 게다가 오는 9월, 애플이 AI 기능을 넣은 아이폰16 출시를 앞두고 있다. 삼성전자 입장에선 아이폰16이 출시되기 전 갤럭시 S24 시리즈로 확실한 승기를 잡고, 하반기 선보일 Z폴드와 플립으로 쐐기를 박아야 하기에 조급증 역시 커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삼성전자가 진짜 고민해야 할 문제는 갤럭시 S24 시리즈 판매량이 아닌 어떻게 소비자들을 열광케 할까가 아닐까. 애플 마니악은 아이팟을 썼던 아이들이다. 이들이 성인이 돼 아이폰과 아이패드, 그리고 애플TV까지 구매하고 있다. 애플이 강한 건 기술도 디자인도 죽은 스티브 잡스도 아닌 마니아를 넘어선 마니악 덕분이다. 삼성전자가 애플에게 이기는 게임을 하기 위해선 갤럭시에 열광하는 마니악을 만들어야 하고, 이를 위해선 잘 만들어진 제품에 더할 플러스알파를 찾아야 한다. 이게 삼성전자의 남은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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