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회사채 시장의 갑과 을
미래에셋증권, 올해 CJ그룹사 딜 수임 '제로'…CJ CGV 딜 외면 대가
이 기사는 2025년 07월 16일 08시 29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딜사이트 이소영 기자] 요즘 회사채 시장을 보면 발행사들이 대형 주관·인수단을 꾸리는 일이 하나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신용등급이 낮은 비우량 기업일수록 그 경향이 도드라진다. 최근 수요예측에 나선 CJ CGV만 봐도 기용한 주관·인수단 수가 10곳에 달했다. 모집 규모는 1000억원 남짓인데 판이 그보다 크다는 평가다.


겉으론 과하다 싶지만 발행사 입장에선 나름 합리적인 전략이다. 조달 안정성을 보장받을 수 있어서다. 투자 수요가 부족해 미매각이 나면 여러 증권사가 추가 청약 영업에 나서주고, 추가 청약으로도 모집이 안되면 총액 인수로 물량을 떠안아 준다. 여기에 증권사 간 경쟁을 붙이면 금리 조건도 좀 더 유리하게 가져갈 수도 있다.


다만 기용되는 주관·인수단 입장은 반대다. 딜 하나에 10곳씩 동원하고자 하는 건, 수요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다는 방증이다. 결국 높은 확률로 미매각이 발생하면 이들은 청약부터 셀다운까지 고단한 절차를 고스란히 감내해야 한다. 자연히 피하고 싶은 딜이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럼에도 증권사들은 해당 딜을 거절하기 쉽지 않다. 까다로운 계열사 딜을 외면하면 그룹 전체의 발행 라인업에서 제외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계열사 딜에 도와주지 않고 쉽고 안정적인 딜만 수임하는, 즉 '단물만 빼먹는 증권사'로 낙인찍히는 순간 해당 그룹과의 관계는 사실상 끝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채권 시장의 오래된 불문율이다.


실제 미래에셋증권이 이같은 현실을 정면으로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2022년 CJ CGV의 후순위 전환사채(CB) 딜에 단독 주관사로 참여했다가 대규모 미매각 물량을 떠안았고 이후 CJ CGV 딜에서 손을 뗐다. 그랬더니 그 대가는 혹독했다. 올해 CJ제일제당, CJ대한통운, CJ ENM, CJ프레시웨이 등 CJ그룹 내 4개 계열사가 줄줄이 채권 시장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미래에셋은 단 한 건의 주관·인수단 명단에도 들지 못하면서다. 올해만 1조원이 넘는 자금을 조달한 CJ그룹 딜을 통째로 놓친 셈이다. 


그 여파는 고스란히 리그테이블 주관 순위로 이어졌다. 5년간 단 한 번도 7위 아래로 내려간 적 없던 미래에셋은 올해 딜사이트의 리그테이블 기준 8위로 밀려났다. CJ CGV 딜을 외면해온 결과가 올해 상반기 실적 판도를 뒤흔든 셈이다. 결국 미래에셋도 올해 CJ CGV 딜 인수단에 다시 이름을 올리며 관계 복원에 나섰다. CJ라는 대형 그룹사와의 끈을 이어가기 위해선, 설령 손해를 좀 보더라도 몸을 던져야 한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물론 CJ그룹 입장에선 계열사 중 아픈 손가락인 CJ CGV의 자금 조달 과정에서 줄곧 손을 뗐던 미래에셋을 보는 시선이 곱기만 할 리 만무하다. 하지만 당시 미래에셋은 단독으로 미매각 위험을 떠안았고, 후순위 전환사채(CB)를 소화하며 고전했던 당사자다. 그 뒷이야기를 누구보다 잘 아는 CJ그룹이 올해 전면 배제라는 방식으로 응답한 건 그 자체로 과하다는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장면을 시장에서도 모두 목도했다보니, 누군가 빠지면 곧바로 '미래에셋처럼 될 수 있다'는 무언의 시그널이 됐다. 이에 CJ CGV 딜 참여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처럼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수임 의지를 보인 증권사들에 대해선 그 희생에 걸맞은 보상이 필요하다. 수수료를 넉넉하게 책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CJ CGV의 채권은 기관투자가들 사이에서 관심 없는 채권으로 분류되고 있다는 게 IB업계 공통된 의견이어서다. 하지만 이번 CJ CGV 딜의 수수료율은 30bp(1bp=0.01%p)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수요예측에서 미매각이 발생했던 롯데건설(A0, 151-2회차) 채권의 수수료율(90bp)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업종과 신용등급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낮은 수준이다.


결국 증권사들은 수익성도 효율성도 뒤로한 채 '관계' 하나로 줄을 서는데, 발행사도 이같은 희생을 당연하게 여겨선 안 된다. 특히 투자자 투심이 낮아 까다로운 딜은 더더욱 그렇다. 관계라는 이름 아래 감내된 그 헌신에 최소한의 예우조차 없다면 발행사도 언젠가는 그 자금 조달에 난항을 겪을 수 밖에 없다. 수수료만큼은 넉넉하게 치르는 것이 최소한의 상식이고, 상호 간 신뢰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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