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배지원 기자] 올해 2월 말 금융감독원이 유상증자 중점심사제도를 도입한 이후 대기업의 조단위 증자 계획이 줄줄이 변동되고 있다. 자금조달 시기와 규모, 공시 방식 등이 금융당국 심사 결과에 따라 조정되면서, 주관사의 대응 역량과 금감원과의 소통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지적이다.
8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2월 27일부터 제출된 증권신고서를 대상으로 중점심사제를 적용하고 있다. 심사 대상이 되면 IPO 절차에 준하는 집중심사가 1주일 내 개시되며 필요시 대면 협의가 수차례 이뤄진다. 특히 경영권 분쟁이나 신사업 투자 목적 등 정성적 기준도 심사 항목에 포함돼 기업 입장에서는 규제 예측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실제 삼성SDI는 당초 2조원 증자를 계획했지만 '1호 중점심사 대상'으로 선정되면서 자진 정정 2회를 거쳐 발행을 마무리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3조6000억원에서 2조3000억원으로 주주배정 증자 규모를 줄였고, 일부 자금은 모회사를 대상으로 하는 제3자배정 방식으로 전환됐다. 이외에도 심사 대상에 오른 12개 한계기업 가운데 상당수가 일정 지연 또는 정정요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대규모 투자 계획이 차질을 빚으며 재무실장인 박지철 전무도 난관에 봉착했다. 박 전무는 ㈜한화에서 약 5년간 재무·경영지원 업무를 담당하며 그룹 구조개편을 이끈 실무 책임자다. 그러나 최근 한화임팩트·한화오션 지분 매입 과정에서 '대주주 자금 몰아주기' 논란에 휘말리며 비판에 직면했다. 이 과정에서 한화그룹 4개 계열사(한화에어로, 한화에너지, 한화임팩트파트너스, 한화에너지싱가포르)는 1조3000억원 규모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기로 결의하게 됐다.
소액주주의 반발이 컸던 이수페타시스 유증도 난항을 겪었다. 지난해 말 이수페타시스는 바이오기업 제이오 인수를 위해 유증을 추진했지만, 금감원의 정정 요구와 시장 반발로 인수가 무산됐다. 증자 규모도 절반 이하로 축소됐다. 계약 해지를 통보받은 제이오는 최근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 과정에서 주관사의 실무역량이 증자 성공의 결정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중점심사 항목을 정확히 이해하고, 사전 협의에 따라 신고서를 구성해야 심사 지연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는 자금조달 실무도 금감원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포스코 계열 포스코퓨처엠도 지난 5월 약 1조1000억원 규모 유증을 발표하며 세 번째 조단위 중점심사 대상으로 선정됐다. 자금은 2차전지 소재 설비 투자에 사용될 예정이나, 신주발행 14.8%, 할인율 20%로 주주가치 희석 우려가 제기됐고, 주가는 증자 발표 직후 8% 이상 하락했다.
증권신고서 기준일을 기점으로 자금조달 성공 가능성이 갈리는 구조가 된 만큼, 향후 기업의 투자 전략과 인수합병(M&A) 일정은 금융당국 심사 동향에 크게 좌우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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