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불법급여로 뒤집었다…최태원 역전승 비결
노태우 300억 민법 746조 불법원인급여로 총력 대응…일등공신 이형희 부회장 승진
이 기사는 2025년 11월 13일 06시 30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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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사이트 윤기쁨 기자] 궁지에 몰렸던 SK그룹을 지배구조 개편 위기에서 구해낸 주역은 결국 이형희 부회장이 꾸린 법률팀이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2심은 최근 대법원(3심)에서 뒤집힌 것이나 마찬가지의 결과가 나왔는데, 이를 노련한 전문가들이 민법 746조 '불법원인급여' 법리를 파고 들어 역전승에 성공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13일 법조계와 SK그룹 등에 따르면 지난해 2심에서 1조3808억원이라는 재산분할 판결이 나왔던 이 사안은 단순한 이혼 분쟁을 넘어 SK그룹의 지배구조 리스크로 비화해 전사적인 역량을 동원한 이슈로 전해진다. 2심 판결대로 최태원 회장이 노소영 관장에게 1조원 중반대의 재산을 나눠줘야 했다면 최 회장 본인으로서는 현금이 부족한 상황이라 자신이 가진 지주사 지분 등을 팔 수밖에 없을 것이었고 이런 문제는 그룹 전체로는 지배구조가 흔들릴 수 있는 비대칭적인 리스크로 여겨졌던 것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지난해 5월 30일에 나온 2심 재판부의 판결은 당사자들 뿐만 아니라 SK그룹과 자본시장에도 즉각적인 충격을 일으켰다"며 "재판부는 1조3808억원을 현금으로 지급하라고 판시했는데 이는 최태원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 자체가 분할 대상은 아니라고 봤지만 사실상 이 주식의 처분 없이는 조 단위 현금 마련이 불가능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SK그룹은 실제로 2000년대 초반 행동주의 글로벌 펀드 소버린의 적대적 공격 이후 최대의 지배구조 위기에 직면했고 조 단위 현금 유출은 SK㈜ 주가하락은 물론 최 회장의 그룹 지배력 약화로 직결될 수 있는 중대 사안으로 지적됐다. 


◆ 노소영 관장 승리했다면…성공보수 3000억 추정


사실 법조계 막후에서도 기존 가사소송의 위자료나 재산분할 판례를 뒤집은 2심 판결로 인해 천문학적인 소송전이 벌어졌다. 2심에서 사실상 승소한 노소영 관장 측은 법무대리를 로펌 율우 외에 평안과, 한누리, 리우 등으로 늘리며 중견 법무법인 사이에서는 스타워즈라고 불릴만한 조력자 군단을 꾸렸다. 관련 변호인단은 만약 1조 3808억원의 재산분할안이 3심에서까지 그대로 확정될 경우 통상적인 성공보수 비율(약 20%)만 가정해도 약 3000억원에 육박하는 보너스를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이혼소송 성공보수가 수천억원대의 호가를 아우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노소영 관장이 세종이나 광장, 태평양 등 4대 로펌을 제외하고 변호인단을 꾸린 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들 레거시 로펌들이 수임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법조계나 재계에서는 SK그룹의 영향력을 의식해 국내 4대 대형 로펌이라도 감히 노 관장 측 대리를 맡기 어려웠다는 후문이 나온다. 노소영을 대리할 경우 송사에 승리하더라도 앞으로 SK 관련 소송의 수임은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어서다. 


이런 맥락에서 노소영 관장 측은 대법원 판단을 앞두고 감사원장과 국회의원을 역임하고 가사소송의 정점인 서울가정법원장을 지낸 최재형 변호사를 법률대리인으로 추가 선임해 전열을 가다듬었다. 노 관장 측은 사실 오랜 배우자에게 배신 당한 아내의 이미지를 부각해 소송에 나섰고 4대 로펌을 고용하는데는 실패했지만 명망가를 대리인으로 선임하기 위한 재력이나 사회적 지위 측면에서는 최태원 회장에 그다지 부족함이 없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최태원 회장이나 SK는 자신들의 명운이 걸렸다는 현실을 인식해 총력전에 나섰다. 그룹의 커뮤니케이션을 총괄하는 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위원장을 중심으로 300억원 유입 주장에 대한 대응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수펙스는 2심 판결 직후 여론 대응은 물론 상고심을 대비한 법률 대응 전략까지 수 개월 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제는 최태원 회장 개인의 가사 송사이면서도 SK그룹의 성장사가 왜곡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2심 판결은 SK그룹 입장에서는 충격과 공포의 문제로 지적됐기 때문에 이 위원장은 당시 법률대리인단 구성부터 면밀히 재검토해 공을 들였다. 


◆ 법리전문가 홍승면, 이재근 합류 


특히 기존 2심까지 대리한 김앤장 법률사무소 외에 대법원장 후보까지 올랐던 홍승면 변호사와 법무법인 율촌의 이재근 변호사 등을 영입하며 상고심 드림팀이 꾸려졌다. 홍 변호사는 법 이론에 있어 국내에서 따라올 이가 없는 정통 법조인으로 평가받은 인물이다. 여기에 이재근 변호사는 현재도 진행 중인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비롯한 고 구본무 미망인 일가의 상속 분쟁은 물론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등 재계의 굵직한 소송을 승리로 이끈 커리어를 자랑한다. 이들이 3심에서 SK 측에 합류하면서 2심 판결의 논리를 뒤집을 새로운 대응 전략에 TF의 초점이 맞춰졌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법조인들은 팽팽하던 양측의 승부처가 2심에서 인정된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의 성격을 규명하는 지점에서 나타났다고 지적한다. 일단 300억원의 실제 유무에 대해서는 양측의 입장이 갈렸다. 그런 토대 위에서 노소영 관장은 300억원이 종잣돈이 되어 그룹을 형성하는 기틀로 쓰였다는 주장을 했고, 기존 SK 측은 300억원을 부정하면서 동시에 그룹 성장의 인과관계도 왜곡됐다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새로운 최태원 회장 측 법률자문단은 300억원 유입설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반박하면서 이것이 만약 실제했다고 하더라도 불법적인 성격이라는 지적을 추가했다. 특히 홍승면 이재근 변호사는 노소영 관장 측이 재산 기여의 증거로 제시한 이 자금에 대해 민법 746조 불법원인급여 법리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법적인 뇌물을 재산분할에서 이른바 기여의 대상으로 인정한 것은 원심 판단의 치명적 오류라는 점을 집중적으로 지적하는 변론을 내놓은 것이다. 이는 2심에서 크게 다뤄지지 않았던 쟁점이었다. 


홍승면 변호사(왼쪽), 이재근 변호사

◆ 노태우 비자금 실제했더라도 불법원인급여 지적


사실 300억원은 현재 관점에서 보면 엄청난 부정부패의 결과로 지적될 수 있다. 전 대통령이 공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300억원의 부정축재 자금을 모았고, 이를 출가한 딸과 재벌 사위에게 증여했다는 사실은 도덕적인 관점은 물론이고 형사법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사안이다. 증여자나 수증자 모두 중대한 처벌을 얻을 수 있는 문제로 지적된다. 하지만 해당 사안은 만약 실제했다고 가정해도 공소시효가 지나 관련 쟁점 자체가 또 다른 송사의 근거가 될 수 없었다. 게다가 법률적 판단으로 보면 증여의 성격을 말 그대로 불법적인 것으로 정의한 것이 대법관들의 동의를 얻어낸 셈이다.  


실제로 불법원인급여는 민법이 규정하는 사안으로 불법의 원인으로 재산을 주거나 노무를 제공한 경우, 그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는 원칙을 의미한다. 예컨대 도박 자금이나 공직자의 부정축재자금 등 사회질서에 반하는 이유로 재산을 급여했다면 나중에 돈을 돌려달라고 법적으로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이 원칙도 불법의 원인이 받는 사람(수익자)에게만 있을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 


법리에 따르면 노소영 관장이 주장한 300억원은 부정축재금으로 볼 여지가 크고, 이 때문에 노태우 대통령 일가가 300억원의 원금이나 그로 인한 수익금을 30여 년이 지난 후에 돌려달라는 주장은 민법 746조에 의해 배척될 수 있다. 단서 조항에 따른다고 하더라도 최태원 회장이나 SK 측이 불법의 원인이 되어 300억원을 강제로 달라고 요청한 사실도 없기 때문에 대법원은 이 변론을 받아들였고, 이는 2심 판결을 파기환송하는 결정적 근거가 됐다는 설명이다. 


대법원은 이런 연유로 1조원이 넘는 재산분할 결정을 파기하면서 2심에 분할의 규모를 재산정하라는 주문을 내놓았다. SK로서는 사실상 1조원이 넘는 분할 리스크를 없앴고, 차후 2심의 재논쟁에서 노소영 관장의 기여를 낮추는 전략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1년 여 만에 큰 송사에서 역전극을 만들어낸 최태원 회장은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 불과 2주 만에 임시 수펙스추구협의회를 열고 최고 임원급 인사를 단행했다. C레벨 인사에서 이번 송사 승리의 숨은 주역인 이형희 위원장은 그룹 부회장에 올랐다. 2023년 말 인사에서 기존 조대식, 박정호 전 부회장이 모두 경영 2선으로 물러난 이후 새로운 부회장이 선임된 것은 오너가의 신임을 기초로 한다. 이 신임 부회장은 1962년생으로 1988년 SK텔레콤에 입사해 SK텔레콤 CR부문장, SK브로드밴드 대표이사 사장 등을 역임했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는 SK수펙스추구협의회에서 사회적 가치(SV) 위원장을 지냈고, 2023년부터는 그룹의 대외 메시지를 총괄해 온 최태원 회장의 핵심 측근 인사로 꼽힌다. 최 회장과는 고등학교(신일고)와 대학(고려대학교) 후배로 연관돼 있다. 


재계 관계자는 "파기환송심에서는 SK㈜ 주식 자체의 특유재산 인정 여부 등이 다시 핵심 쟁점이 될 것"이라며 "그룹 내 입지를 공고히 한 이형희 부회장의 역할도 지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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