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이슬이 기자] 세계 최고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로 불리는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가 국내 더존비즈온 지분 인수전에 뛰어들었지만 EQT파트너스에 주도권을 내준 것으로 전해졌다. 과거 OB맥주와 SK넥실리스 등 국내 바이아웃(경영권 인수) 시장에서 '잭팟' 성공 신화를 써낸 바 있지만 지난 몇 년간 인프라·크레딧 투자에만 집중하다가 바이아웃 펀드 전략의 거래에서는 이렇다 할 출사표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8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EQT파트너스는 사실상 단독으로 더존비즈온 최대주주인 김용우 회장 측과 지분 인수 조건에 관해 협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KKR을 포함한 복수의 외국계 PEF 운용사들이 인수 의향을 타진한 가운데 EQT가 가장 나은 조건을 제시했다고 알려진다. 2대주주인 SPC '신한밸류업제일차'가 보유한 지분(9.9%)을 사들인 뒤 주주 간 계약을 통해 향후 김 회장의 경영권 지분까지 인수할 계획이다. EQT파트너스는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이 설립한 유럽계 글로벌 운용사로 모건스탠리 출신의 여성 경영자인 연다예 대표가 활약하고 있다.
더존비즈온은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 등 기업 운영 솔루션을 판매하는 기업으로 독일 SAP에 이어 국내 점유율 2위를 차지하고 있는 토종 소프트웨어 강자다. 연 매출 4000억원과 영업이익률 20%대를 기록하며 탄탄한 수익구조를 갖춘 알짜 중견사다.
KKR은 이번 거래를 박정호 KKR 한국대표가 총괄하는 바이아웃 펀드에서 주도해 검토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 대표는 2009년 KKR 한국사무소 설립 멤버로 합류해 PE 부문 대표를 맡으며 다수의 대형 딜을 주도해왔다. 이전에는 TPG캐피털 부사장으로 재직하며 한국, 일본, 호주, 동남아시아 지역 투자를 집행했고 씨티글로벌마켓증권 전신인 살로먼스미스바니(Salomon Smith Barney)를 거쳐온 자본시장의 잔 뼈 굵은 인물로 평가된다.

KKR은 이번 딜을 통해 다소 주춤했던 국내 바이아웃 투자에 다시 시동을 걸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양한 대표가 이끄는 인프라 펀드는 에코비트, SK E&S 등을 통해 꾸준히 투자 집행을 늘려온 반면 박정호 대표가 총괄하는 바이아웃 펀드는 수년째 별다른 트랙레코드를 남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최근까지 박 대표와 함께 한국 시장 투자를 맡아온 임형석 전 KKR 한국사무소 공동 대표는 회사를 떠나 독립 사모펀드(PEF) 운용사를 설립했다고 알려진다.
과거 글로벌 PEF 업계에서도 '레전드 딜'로 꼽히는 OB맥주를 시작으로 SK넥실리스 등 한국 시장에서 잭팟을 터뜨렸던 KKR이지만 이제는 그때만큼의 성과를 기대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 시장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률을 확보할 수 있는 조(兆) 단위 매물 자체가 줄어든 데다 과거 OB맥주 사례와 같이 단순 레버리지 전략만으로는 기대 수익률을 충족하기 쉽지 않은 탓이다. 당시 거래는 KKR 글로벌 대표로 승진한 조셉 배 당시 아시아대표가 주도했다.
KKR 내부에서는 투자 이후에도 사후관리와 실제 엑시트 밸류 측정이 중요한 바이아웃의 가치를 중요시 여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조단위 메가딜을 찾기가 쉽지 않고, 조셉 배 대표가 미국 본사를 총괄하게 된 이후에는 대형 거래를 이끌 주축 인물들이 없다는 지적을 받으면서 존재감이 사라졌다는 지적이다. 현재 박정호 대표는 글로벌 파트너로 승진한 이후 가장 먼저 한국 사무소 내 인프라 및 크레딧 등 바이아웃 외 투자 조직을 세팅해 전략 다변화를 이끌어 왔다. 2022년부터 고금리 시대가 열리면서 구조화 금융을 활용한 투자 수요가 늘고 ESG 기반 실물 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진 만큼 바이아웃 외 투자 전략 기조 전환에 힘을 실었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PEF 운용사들이 소위 말하는 하우스의 '이름값'이나 자금력만으로 딜을 선점하던 시절은 지나갔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현재 토종 PEF 운용사들도 조 단위급 대형 거래를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는 펀드 사이즈와 실행력을 갖췄고 글로벌 LP 유치나 산업 전략 수립 면에서도 과거보다 뚜렷한 경쟁력을 인정받는 상황이다.
과거 소수 지분 인수를 검토한 경험도 있으며 조 단위 매물이 아니라 자금 조달 부담도 크지 않아 더존비즈온은 KKR 입장에서 놓치기 아쉬운 매물이었다는 평가다. 아직 거래 조건에 대한 조율이 남아 있는 만큼 추후 KKR이 다시 협상에 뛰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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