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이다은 기자] "과거 내수시장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던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최근 응집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글로벌시장에서도 속속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다만 이러한 흐름이 일부 기업들이 아닌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도 적지 않다."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이 내수를 넘어 글로벌 무대로 발돋움하고 있는 가운데 자본시장전문미디어 딜사이트는 15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K-Bio 기술수출, 성과와 전략'을 주제로 '2025 제약바이오포럼'을 개최했다. 이번 포럼은 K-바이오의 글로벌 기술수출 현황을 점검하고 성공사례를 바탕으로 업계 전반에 걸친 전략적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승호 딜사이트 미디어그룹 이사회 의장은 개회사에서 "올해 국내 제약바이오사들의 상반기 기술수출 규모는 이미 10조원을 넘어섰다"며 "기술수출의 범위 역시 항암제와 비만치료제 그리고 신약개발에 활용되는 플랫폼 기술수출까지 점차 확대되며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입지는 탄탄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다만 후보물질 선정에서부터 기술수출 노하우까지 예상하지 못한 높은 위험부담과 시행착오가 도사리고 있다"며 "글로벌 빅파마들이 향후 시장을 주도할 신규 모달리티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가운데 K-Bio의 양적·질적 도약은 반드시 이뤄져야 할 숙제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 "퍼스트 무버 위한 생태계 구축 절실"

이날 첫 연사로 나선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확대하려면 '퍼스트 무버'에 걸맞은 생태계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블록버스터 의약품의 특허 만료가 줄줄이 예고된 현 시점이 국내기업들에 전략적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 부회장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제약바이오 산업의 트렌드는 ▲인공지능(AI)의 본격적인 도입 ▲미국 FDA의 규제 환경 혁신 ▲중국의 위상 강화 ▲글로벌 제약사들의 인수합병(M&A) 및 기술이전 확대 등이 꼽힌다.
이 부회장은 2032년까지 글로벌 빅파마의 45개 이상의 주요 블록버스터 의약품이 독점 생산권 만료를 앞둔 이른바 '특허 절벽'이 예견돼 있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이에 대비해 빅파마들은 잠재력과 수익성이 높은 시장 선점을 위한 적극적인 인수합병으로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파이프라인 강화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관측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국내 기업들은 특허가 만료되는 글로벌 파이프라인에 자사의 컴파운드를 접목시킬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각 파이프라인별 TPP(Target Product Profile)를 명확히 설정하고 회사가 가진 핵심기술의 방향성을 구체화해야 글로벌 기술이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국내 바이오 산업 구조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글로벌 추격자(Follower) 수준에 머물러 있어 경쟁 속도와 규모에서 한계가 명확하다고 평가했다. 이에 혁신 기술이 도전할만한 구조적 변화와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이 부회장은 "전통과 혁신을 같은 바구니에 담지 말고 각각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이중구조가 필요하다"며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전략산업으로서 경쟁국보다 앞서 나갈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원규 에이비엘바이오 부사장, '벙커버스터' 이중항체 ADC로 글로벌 겨냥

이날 두 번째 연사인 유원규 에이비엘바이오 부사장은 항체-약물접합체(ADC) 시장의 경쟁 심화에 대응하기 위해 이중항체 기반 신약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기존 단일항체보다 항암 효과는 높이고 부작용은 줄일 수 있는 이중항체 ADC를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낙점하고 임상 및 기술이전 성과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유원규 부사장은 "이중항체 ADC는 기존에 하나의 항원이 접목되던 ADC에 2개의 항원을 접목시킨 새로운 모달리티(접근법)"이라며 "단일항체 대비 암세포 발현 타깃이 많아 정확하게 암세포를 표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 부사장은 이중항체 ADC의 차별화된 효능을 강조했다. 연구결과 이중항체가 기존 단일항체에 비해 100배 이상의 항암효과를 보였으며 체중 감소 등 부작용은 적은 것으로 확인됐다는 설명이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이중항체 기술 기반으로 글로벌 기술이전도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ADC의 시장 규모는 2023년 11억6500만달러(약 1조6083억원)에서 2033년 28억6100만달러(3조9496억원)까지 연간 약 10% 이상 성장할 전망이다. 이에 지난 5년 간 ADC 관련 기업 간 파트너십과 공동개발 계약 등이 늘어나는 추세다.
유 부사장은 에이비엘바이오의 ROR1 항체와 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의 링커, 페이로드 기술을 결합한 'ABL202(LCB71)'를 일례로 소개했다. ABL202는 에이비엘바이오의 대표적인 연구 성과로 2020년 중국 씨스톤(Cstone)에 기술이전했다. 1상에서 뛰어난 유효성을 확인했다.
그 외에도 에이비엘바이오는 6개의 이중항체 ADC의 임상을 진행 중이다. 파킨슨 질환 분야로도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는 타깃 발굴부터 제조공정(CMC) 개발까지 일련의 개발 과정을 자체 팀과 연구자들이 이끌고 있는 에이비엘바이오만의 강점 덕이라고 덧붙였다.
유 부사장은 "ADC는 암세포를 정밀 타격하는 무기와도 같아 '벙커버스터'로 비유되기도 한다"며 "과학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최적 조합을 통해 성과를 더욱 확대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배성민 한미약품 상무, 맞춤형 파이프라인으로 비만시장 공략

세 번째 연사인 배성민 한미약품 연구개발(R&D) 상무는 'H.O.P(Hanmi Obesity Pipeline)'를 앞세운 글로벌 비만치료제 전략을 소개했다. 경구형 제형, 적응증 확대, 근육 손실 방지 등 최근 비만 치료 트렌드에 맞춘 파이프라인으로 전 주기적 비만을 영역을 아우를 계획이다.
배성민 상무는 "최근 비만 치료제 시장에서는 주사제의 불편함을 극복하고 시장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경구제로 진화하는 흐름이 분명하다"며 "후발주자들은 단순한 감량 효과가 아닌 다중 타깃과 복합 적응증 전략을 통해 새로운 경쟁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고 관측했다.
이에 발맞춰 한미약품은 현재 총 6종의 비만 치료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해당 파이프라인은 ▲에페글레나타이드(Efpeglenatide) ▲HM15275(LA-GLP/GIP/GCG) ▲HM17321(LA-UCN2) ▲비공개파이프라인 ▲경구 투약형 치료제 ▲디지털 테라퓨틱스(플랫폼)다.
배 상무는 "에페글레나타이드는 심혈관 및 신장 질환 보호 효과가 있는 GLP-1 기반 치료제로 장기 지속형 기술을 접목해 부작용을 줄였다"며 "'HM15275'는 수술 요법 수준의 향상된 체중감량 효능을 보였으며, 'HM17321'는 근육 손실을 최소화하고 근육량을 증가시키는 데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특히 에페글레나타이드는 한미약품의 장기 지속형 기술 '랩스커버리(LAPSCOVERYTM)'를 접목해 체내 흡수 속도를 조절한 덕분에 구토와 오심 같은 부작용을 줄였다. 현재 3상 임상 결과를 기다리고 있으며 내년 국내 출시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까지 나와 있는 비만 치료제들은 음식 섭취를 억제하는 방식으로 체중을 감량하는 방식이다. 그렇다보니 지방과 근육이 함께 손실되며 결과적으로 기초 대사량 자체가 감소하게 된다. 그 결과 약물 투여 중단 이후 식이요법 조절과 운동을 병행하지 않을 경우 더 빠르게 살이 찌는 요요 현상으로 이어진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배 상무는 지방만 선택적으로 감량하는 동시에 근육을 증가시키도록 설계된 HM17321의 혁신성을 강조했다. 비만 마우스를 대상으로 실험환 결과 HM15275와 혼합한 경우 더 많은 체중 감량과 함께 근육 손실은 거의 없는 데이터를 얻었다고 밝혔다.
배 상무는 "콤보로 활용시 하나의 주사기에 혼합해 투약할 수 있어 환자 편의성이 크다"며 "모든 비만 환자에게 양질의 체중관리를 제공할 수 있는 전략적 게임 체인저로 기대하고 있는 과제"라고 말했다.
◆전태연 알테오젠 부사장, 의약품 전주기 내재화로 도약

네 번째 연사를 맡은 전태연 알테오젠 부사장은 피하주사(SC) 기술 경쟁력과 특허 기반의 전략적 우위를 앞세워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선다고 전했다. 회사는 특히 개발부터 생산까지 의약품 전주기를 내재화하며 자체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단 방침이다.
전태연 부사장은 SC는 기존 정맥주사(IV) 대비 환자 편의성과 경제성이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SC는 적은 부작용 ▲경제성 ▲환자 편의성 제고 등의 장점이 있으며 특허 전략 측면에서도 새로운 제형으로 특허 연장 효과를 볼 수 있다.
전태연 알테오젠 부사장은 "각종 연구를 통해 SC제형이 IV제형 보다 최대 70% 저렴하고 투약 소요시간도 평균 3~5분으로 최대 99% 단축된 것으로 확인됐다"며 "의료진과 환자 모두 선호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알테오젠은 IV를 SC로 바꾸는 하이브로자임 플랫폼을 기반으로 글로벌 빅파마들과의 기술이전 협의를 확대하고 있다. 더군다나 경쟁사인 할로자임이 고객사에게 독점권을 제공해 이외 기업들이 알테오젠을 찾을 수 밖에 없는 시장 환경이 조성된 것은 긍정적인 요인이다.
전 부사장은 하이브로자임이 기능적으로는 할로자임과 같지만 특허가 다르고 활동성(액티비티)과 수율 면에서 우위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알테오젠은 면역치료에서 타깃치료로 플랫폼을 확장하고 글로벌 최초로 항체-약물접합체(ADC)의 SC 제형 기술수출도 성사시킬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알테오젠은 SC제형과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결합한 새로운 플랫폼도 추진중이다. 현재 미국 벡톤디킨슨(BD)과 함께 웨어러블 주입기를 통한 SC제형 투약을 논의 중이다. .
전 부사장은 "회사는 특허소송 준비도 잘 하고 있다"며 "의약품 개발 전주기 내재화를 통해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엄민용 신한투자증권 연구위원 "코스닥 바이오, 글로벌 기술수출 주도"

마지막 연사로 나선 엄민용 신한투자증권 연구위원은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활발한 기술 이전 덕에 글로벌 시장의 중심으로 진입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코스닥 상장 바이오 기업들이 바이오베터(개량신약) 역량을 바탕으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며 산업의 양적·질적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엄민용 연구위원은 국내 코스피200 헬스케어 지수는 미국 바이오 지수와 동반해서 움직이는 경향이 있는 것과 달리 코스닥150 헬스케어 지수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고 밝혔다.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바이오 기업들이 굵직한 신약개발 성과를 기록한 덕이라는 설명이다.
엄 연구위원은 "현재 코스닥 업체들이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 전체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며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변방에서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는 추세"라고 진단했다.
실제 국내기업들의 빅파마 기술이전 및 공동개발 계약은 2022년 1건→2023년 3건→2024년 7건→올해 상반기 6개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알테오젠은 미국 머크와 할로자임 특허 소송 이슈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기술 이전 확장성을 보이고 있다. 펩트론은 LG화학과 국내 판권 계약을 체결했던 전립선암·성조숙증 치료제 '루프원'에 대한 식약처 품목허가를 받으며 상업화 성과도 확보했다.
끝으로 엄 연구위원은 "지금까지의 성과는 기업들의 적극적인 R&D 투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신약 개발로 이어지는 투자가 지속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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